그럼에도 교육과정 문식성은 중요하다

   이전 글에서 '교육과정 문식성과 혁신의 거짓말'이라는 글을 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교사 공동체 안에서만 우리끼리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맞춰 서로를 평가하고 후려치고 치켜세우는 게 우습다는 의미와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소용이 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서 비롯한 일종의 자조(自嘲)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나는 혁신에 대해서는 여전히 냉소적이고, 이전 글에서 쓴 것과 크게 입장이 다르진 않지만 교육과정 문식성에 대해서는 현실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너무 폄하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교육과정 문식성이 교사의 전문성의 한 축을 이루는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문서를 석판에 쓰인 모세의 율법 계명마냥 절대적으로 맹종하고 교조적으로 임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교육과정 문서를 간과하고 과소평가하는 것도 큰 문제라 생각한다. 그것은 국가적 자원이 들어간 학문, 전문성, 정책의 산물이며 꽤나 높은 수준의 합리적 내용과 내적 정합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대학교 4년 내내 하는 것이라는게 1학년 때의 교양과정을 빼면 결국 교육과정 문서의 기반이 되는 이론들을 배우고, 교육과정 문서대로 출판된 교사용 지도서를 읽고 시연해보는 것들의 반복인데 이 체계를 요약하는 '교육과정 문식성'이라는 말을 무시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존재 기반을 무시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자 부끄러운 수준의 오만과 무지가 될 것이다. 

  교육과정은 아래로부터 나와 일종의 정치성도 띠었던 '혁신'에 비해 높은 수준의 체계와 본질적 내용을 담고 있다. 비본질적 업무에 치이거나 매일매일 긴급한 새로운 일들과 부딪히는 교실에서의 갈등에 치이다 보면 우리가 교육자로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예감 같은 게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교육과정을 돌아보는 것은 스스로 초심으로 돌아가는 의미가 있을 뿐더러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교육과정과의 만남은 교사 개인으로서,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고 다른 차원의 경험을 제공해준다.

  예전에는 두꺼운 문서를 마우스 휠을 굴려가며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면 요즘은 인공지능에게 교육과정 문서를 학습시켜 서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자신의 학급 교육과정, 교과 교육과정을 가지고 서로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며 검증을 하다보면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새로운 성찰에 이를 수도 있고, 자신이 생각보다 잘해왔다는 '뜻밖의 위로'를 얻어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든 공부하기가 좋아진 시대다. 그것은 교육과정과의 만남, 교육과정 문식성을 통한 높은 정합성을 갖춘 교육 실천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그렇다. 그 무엇이 됐든 공교육 종사자로서의 교육자인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문식성은 버려서는 안 되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 실천된 교육과정 문식성의 질 높은 공교육으로 교사집단 바깥의 구성원들에게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이상론은, 비록 현실과 괴리가 존재하지만 함부로 버려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교사가 인플루언서를 지향하며 인터넷 방송을 기웃거리는 시대다. 교사의 실질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고, 갈라파고스처럼 폐쇄된 교사 생태계 안에서만의 우리끼리 통하는 논리와 공허한 명분들에 질식할 것 같은 저경력 교사들이 바깥을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일수록 무의미하게 교실 바깥의 목소리를 좇으며 방황하기보다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을 검증해나가는 것이 나침반 없이 원양을 항해하는 답답함을 해소하는 정도(正道)가 될 것이다. 

  다만, 교육과정 문식성만으로 교육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건 교육과정 자체가 현실과 유리되어있는 '내재된 무책임' 때문이랄까. 교육과정 문식성을 바탕으로 교육과정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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