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수님과의 만남(개발자로서의 출발)
4월 초순은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유관 분야의 교수님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대였다.
4월 4일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지훈 교수님, 4월 8일엔 경인교대 류청산 교수님을 뵀다.
2024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하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공부를 시작했지만, 전략도 방향도 없는 상태에서 어둠과 안개 속에 뚝심만으로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작년에만 20개의 수업을 들었지만, 마구잡이로 때려 들으며 전공 용어에 대한 익숙함을 늘리고 대충 교수님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나 느낌이나 잡게 되는 정도에 그쳤다. 만 33세 늦은 나이에 개발자 준비를 하며 새롭게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나 큰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다니고, EO 등 채널에서 개인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를 보기도 했지만 어딘가 막연하고 공허한 느낌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어느 정도 위로와 동기 부여가 되기는 하지만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에 대한 확신을 주진 못했기 때문이다.
2025년엔 그로스로그에 가입했다. 좀처럼 들어가보지 않는 방송대 사이트지만, 어쩌다 변덕으로 컴퓨터과학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방송대 컴퓨터과학과에도 개발자 '그로스로그'라는 이름의 동아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깊은 고려 없이 바로 가입 신청서부터 작성했다. 개발자 동아리라고 해서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주워 듣고 어깨너머로 뭐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 무작정 들어온 것이지만 프롭테크 기업을 운영하던 분이 대표를 맡아 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곳인데다 나보다 어리고 젊은 분들이 많아 예상치 못한 횡재를 한 느낌이 들었다.
(웰컴키트라고 해서 그로스로그를 표현한 머그컵에 볼펜에다 티셔츠까지 준다. 여러모로 혜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강지훈 교수님과의 만남은 이 그로스로그에서 추진한 4월 '교수님 특강' 행사를 통해서였다.
강지훈 교수님은 2025년 올해 방송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로 들어온 분으로 GPU 시스템 자원을 연구 주제로 하고 계셨다. 교수님 특강은 초보를 대상으로 '개발자가 나아갈 길'을 주제로 했다. 컴퓨터과학 및 개발 분야와 전혀 무관한 영역에서 개발자 직무와 컴퓨터과학에 호기심을 가지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찾은 내게 딱 맞는 주제라 할 수 있었다.
강지훈 교수님과 나는 '취미와 덕질이 학습과 하나가 되어야 지속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측면에서 교육관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 역시 교육자이기에 학생들에게 의식적 연습은 매우 중요하지만 결국 장기지속하기 위해선 이 분야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취미를 붙여야 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교수님은 워해머 보드게임을 예로 들며 컴퓨터과학 같은 방대한 분야의 학문의 모든 것을 습득할 순 없으니 먼저 자신의 흥미 영역부터 개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뭔가 중요한 원리가 관통하여 큰 공감을 이루는 감동이 있었다.
학부 교과목은 결국 기말고사 대비용일 수밖에 없고 자신도 운영체제 과목에서 배운 내용이 컴퓨터과학과 졸업후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했을 때는 기초 전공과목에서도 허덕이는 나 자신의 비루함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본인도 웹 프로그래밍을 모르며 사실상 C만 쓰며 일하고 있으니 많이 아는 것보다는 하던 거에 맞춰서 점점 확장해나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방송대 과목이 사실상 C 위주로 설명이 되어 있어서 C를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챗지피티를 통해 프로그래미즈를 소개받아 C, C++, Java, Python, SQL 실습을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상 저것들을 베이직 과정에서 훑고 지나간 거지만, 일단 하나의 주력 언어를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개발자가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선 lower layer(구체적으로 운영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셨으니 코딩 기능 중심의 부트캠프에 들어가 훈련부터 받고 보기보다는 컴퓨터과학 전공 저변을 갖추는 게 중요할 거라는 내 초기 전략이 어느 정도 합리적이었다는 위안을 받았다. 메모리 할당 구조, 운영체제, 컴퓨터 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어야 보다 능률적인 개발이 가능할 것이고, 지금처럼 인공지능이 발전해 바이브코딩이란 말이 돌아다니는 때엔 코딩 기능인이 되는 것보단 컴퓨터과학 이해를 통한 기획과 연관성 파악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었다.
단, '내가 처리하려는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컴퓨터란 결국엔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전산 도구'라는 본질에 접근했을 때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다 명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안 그래도 한국경제신문 AI연구 교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공지능 교재를 감수하며 컴퓨터과학에 흥미가 생긴 만큼, 앞으로의 학습은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구현하고 이걸 사용자에게 얼마나 직관적이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로 제공할까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해야겠다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AI는 확실히 우수한 도구이지만 아직까진 보조적 역할에 그치는 만큼, 단순한 코더로 전락하여 AI에 대체되는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교육과 인문학이라는 다른 도메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내 입장에서 프로그래밍 능력에 바탕을 두고 기획과 문제 해결 능력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강지훈 교수님 같은 경우는 C언어가 주 언어로서 API가 어떻게 hard coding되어있는지 알아보는 방식으로 훈련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어느 정도까지 내 상황에 접목하고 적용할지는 내 학습 성실도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로스로그의 여러 회원들이 강지훈 교수님께 적극적으로 질문했지만 아무래도 손 들 타이밍을 놓친 나로서는 방송대 이메일 계정을 통해 따로 궁금한 지점을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강지훈 교수님은 굉장히 성실하게 답장을 써주셨는데, 처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교과서를 공부하듯 진도를 나가는 개념으로 블로그나 유튜브에 많이 공개된 프로젝트나 교재의 연습문제를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 하셨다.
류청산 교수님은 2013년 2학기에 생활과학과교육II 수업에서 뵀던 분으로 열정적으로 미래학 강의를 해주셨던 분이다. 교육과정 문서나 읽어주고 지도서나 훑을 거라 예상했다가 예기치 않은 폭풍 같은(?) 미래학 장광설에 많은 동기들은 새파랗게 질렸지만 나는 꽤나 흥미 있게 들었고, 나름대로 수업을 잘 이해한 덕분인지 A+도 받았다. 이때 교수님께 수업에서 얻은 감동을 이메일로 써 보내드렸더니 미래학 포럼에 초청받아 프레스클럽에도 놀러갔는데, 이때 미래학 세미나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대부분 현실로 실현된 것이 놀랍다. 컴퓨터과학과에도 편입했고 나름 미래학이 말하는 혁신과 관련된 분야 도메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메일을 보내 인사드리고 싶다 했더니 인천캠퍼스 예지관에서 반가이 맞이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류청산 교수님은 강지훈 교수님이 채워주지 못한 또 다른 영역에서 나에게 조언을 남겨주셨다. 강지훈 교수님이 엔지니어셨다면 류청산 교수님은 교육 정책, AI교과서 등에서 활약하시는 분이라 컴퓨터과학을 통해 창업을 할 생각이라면 보다 전략적 방향성이 있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명확하게 해야겠다는 방향의 조언을 보다 생생하게 내게 전할 수 있었다. 교육 도메인에서의 데이터 처리가 유망하지 않겠냐는 나의 반문에 류청산 교수님은 교육 콘텐츠에서 벤처 사업의 가치를 찾으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독립된 파트로 고민을 심화해야겠다.
어느새 방송대학교 중간과제물 제출기간이 되었다. 2025년 방송대 1학기도 반이 가 버린 것이다. 시간만 버리고 아무것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있었지만 새로운 경험들 속에 몸을 맡기며 새로운 자극을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루겠다는 다짐으로 이겨내려 한다. 고뇌는 결국 박력 있는 실천으로 딛고 넘어서야 하지 않겠나.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이 만들어낸 인연과 기회들이 새로운 인연과 만남, 재회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 단위로서의 경험을 넘어서는 큰 순환으로 나 자신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해 개발자로 출발하며 스타트업 론칭까지 성공하겠다는 목표에 이 두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 큰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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