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문식성, 혁신의 거짓말

   교사의 전문성을 결정짓는 것은 교육과정 문식성이라는 말이 있다. 교사의 교육행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국가 교육과정이다. 이 국가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학교 교육과정으로 승화되고, 이 학교 교육과정의 일부로서 교사의 학급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실현된다. 

  교사가 교육 전문가인 이유는 교육대학교의 4년 학부 교육과정, 초등교원 임용경쟁시험에서 교육과정 총론에서 각 교과목 내용 각론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 능력을 검증받고 교실 현장에서 그 취지와 맥락에 맞게 이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대받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기대받는 전문성으로 교사는 국가 교육과정의 내용과 취지, 맥락에 맞게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교육대학에선 1학년 때의 행복했던 교양 과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들은 교과교육론 기본 교재를 한 챕터씩 조별 발표를 하며 때우거나 교사용 지도서를 읽고 발표를 하는 수업들이었다. 이런 수업들과 엉성한 임용시험으로 국가로부터 큰 역할과 전문성을 인정받고 기대 받기도 하여 업태가 창조적일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이렇게 정의되고 제도화되어 유통되는 '교육과정 문식성'이라는 것이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지 않다.

  내가 장교 전역을 하고 갓 임용이 됐던 2017년은 한창 경기도교육청이 '배움 중심 수업'과 '혁신교육'을 강조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나는 지식 교육에 관심이 많아 제롬 브루너의 '교과의 구조'와 오개념 수정 등에 관한 이론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오개념 수정은 많은 교사들의 관심을 끄는 뜨거운 분야였으나 제롬 브루너의 이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때 교사 연수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지식의 필요성이 사라졌으므로 지식보다는 감성, 정의적 요소의 지도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의 시점에서 '4차 산업혁명과 AI의 시대에 과연 지식의 필요성이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평생교육자로서 다시 원격대학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해 AI를 직접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당시에도 나는 자리에 앉아 그게 '나라랑 교육 둘 다 망할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각종 교육부, 교육청, 학교 단위의 연수를 통해 정리한 '혁신'은 대충 (i) 교과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식 수업을 하지 않고 활동 중심 수업을 하는 것, (ii) 지필형 평가를 보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수행 평가를 보는 것, (iii) 결과 중심 평가가 아닌 과정 중심 평가를 하는 것, (iv) 학교에서 교장들이 카리스마 있게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평교사들의 회의로 될 수 있는 한 많은 학교 일을 결정하는 것을 학교 민주주의라 하는 것, (v) 엄하게 훈육 지도를 하기보다는 학생들과 수평적인 관계로 지내며 권위적 개입을 하지 않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하나하나 이것이 올바른 교육적 방향인지 깊이 토론해야 할 문제지만, 당시 분위기로는 이것이 '교사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기준'이며 일방적으로 이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혁신적인 교육환경인지' 평가받고 예산을 분배받는 상황이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정말로 기존의 생태계를 전복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압도적으로 창출하는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이런 것들이 정말로 계량화된 성적을 넘어선 학습 발달, 배움의 성장을 촉진하고 그동안 제도 공교육에서 소외받던 많은 학생 다수를 다시 포용하게 하는걸까? 내가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전에 공교육에서 소외된 학생들은 여전히 다양한 이유로 공교육에서 소외되고 있었고, 소위 결과 중심 평가라 불리던 지식 암기 점검 목적의 지필형 고사가 강조되던 학교 문화에서 그나마 챙겨지는 부분이 있던 학력 부분이 외면되기에 이르렀다.

  일종의 '정답'이 된 '과정 중심 평가'는 그것이 따라야만 하는 새 '교리'의 형태로 현장에 수용되었다. 평가 형태의 다양화는 일률적인 평가 방식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실기 중심의 교과에선 적절히 효과를 발휘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필수적으로 암기하고 문제풀이 훈련이 되어야 하는 영역에서 겉보기에 화려해보이는 활동 중심의 평가나 별 의미가 없는 참여형 평가들로 대체가 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런 비판이 누적되자 2019년이었나 '교육과정 문식성'이라는 말과 함께 7차 교육과정의 2015개정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수업을 재구성하고 그에 맞춰 적합한 평가 방식을 채택하면 된다는 대안이 나왔다. 이때 유행한 말이 '교수평 일체화'라는 말로,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평가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워 교육과정과 수업이 따로 놀지 않게 일체화하여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구현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교육과정 문식성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이유는, 교육과정 문서를 읽고 이를 성취기준에 적합하게 수업목표와 수업내용, 교수학습방법을 도출해내는 문해력(literacy)을 '교수평 일체화'를 위한 교사의 전문성으로 꼽았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문서를 통해 끊임 없이 수업을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는 7차 교육과정의 기본 정신(놀랍게도 수시 개정으로 바뀐 지금의 개정 교육과정의 본체가 되는 교육과정은 아직까지도 7차 교육과정이다)이 학생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개별화된 교육과정, 학생 중심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며 각 학년도, 학기의 학생들의 개성, 현장의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가 현장에서 출발해 나름 당대의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나왔으며, 단점과 한계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 나름의 정합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잘 알겠다. 그러나 나는 다시 되묻고 싶다. 이러한 교육과정 문식성과 혁신교육을 도대체 누가 원한단 말인가? 그냥 우리는 우리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의 성채를 쌓았을 뿐이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입시는 모든 교육의 문제를 포괄하지 못한다. 입시 문제에 교육의 모든 문제가 가려져 부당했던 측면이 없었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입시가 교육이 아니라는 단정은 반대 방향의 극단일 뿐이다. 비단, 입시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육은 학생 개인의 현실과 문제에 실질적인 개선을 줄 수 있는 능력 향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구성해낸 개념 체계들의 바깥, 자율적인 민간 시장에서 우리나라 교육과정 문서의 훌륭함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져 '교육과정 문식성'을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학생 중심 교육과정 구현, 교육혁신에 대한 수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대중들이 단편적인 욕망만을 가지고 있어 그저 옆의 아이보다 내 아이가 더 앞서 가는 것을 원해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무차별적인 선행학습을 시키고 지나친 학원뺑뺑이 사교육을 시켜 아이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다 고상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공자원을 운용해 공적인 교육을 하는 공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그 누구도 바라지도 않은 일이고, 딱히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그 실체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초등교사라 중고등의 교과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해당이 없는 비판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가 교육과정의 개념틀을 또 나름대로 얼기설기 짜맞추어 만든 우리만의 개념·논리·기제로 과연 교육계 바깥의 사람들을 상대로 우리의 전문성과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과연 거기에 대하여 공감을 받고 논리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저 국가 면허를 독점해 제도적 보호를 받고 있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며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방식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 정도다.

  성취기준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 재구성,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교육과정 문식성, 이러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은 나름의 이유가 필요해 등장한 것들이다. 하지만 성취기준은 모든 것을 포괄하지도 못하는 최소한의 기준일 따름이며, 이렇게 만들어지고 재구성된 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능력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 교사들이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사들의 전문성이 존재하며 그걸 존중받는 영역이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을 규정하는 교육과정 문식성, 배움 중심 수업, 혁신 등은 그렇게 견고하고 명확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쓸데없는 데서 존재하지도 않는 전문성을 기준으로 두고, 하나마나한 소리나 주고 받으며 괴롭힘 받고 쓸데없는 지적이나 받으며 소모되기보다는 보다 실체가 있는 부분을 공부하고, 실체가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으며, 학생들에게도 실체가 있는 세계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능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교육 바깥의 영역에서 공부할 거리를 찾은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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