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한계를 넘는 꿈
일론 머스크도 그런 지구상의 공간에 대한 비전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남아공 사람이고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으며, 숨 막히는 교통 체증에 시달리는 로스앤젤레스의 교통체증을 2차원 교통 시스템을 3차원 교통 시스템으로 바꿔 해결한다며 지하터널을 뚫어 하이퍼루프 방식으로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구상까지 내놓은 사람이다.
매일매일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리는 교통 체증을 겪으며 시골학교까지 운전해 출근하던 나는 그 구상의 현실성보다 통쾌함에 흡족했던 기억이 난다. 텍사스에 테슬라만의 도시를 만든다든가, 높은 주거비를 대체할 간이주택을 만든다든가 하는 사업을 보면 머스크 역시 공간의 한계를 넘는 실험에 관심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 면적이 좁고 수도권에 모든 인프라가 몰려있는 나라다. 그 몰린 수도권도 철저히 입지에 따른 위계질서로 서열화되어 있다. 공간에 대한 강박이 모든 국민들의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에 따라 기회와 접근성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공간은 하나의 운명이자 질곡처럼 작용한다. 일론 머스크는 그것을 뛰어넘은 사람이고, 그것을 뛰어넘는 방식을 사업의 방식이자 비전으로 제시한 사람이다. 나는 아직까진 토지에 긴박된 유럽 중세 농노의 운명처럼 공간을 한(恨)으로 받아들이며 주어진 공간적 한계에 신음하고 괴로워하고만 있을 뿐이다.
올해로 10년차다. 나는 20대와 30대의 거의를 모두 기회와 접근성이 낮은 6학급의 학교에서 경력을 채웠다. 똑똑한 여학생들은 여주에 발령을 받거나 연천에 발령을 받거나 하면 잠시 실망에 빠지고 다시 서울로 임용을 봐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동년배의 그녀들은 각자 서울에서 삶의 기회를 잘 움켜쥐었고, 전문직 남성들을 찾아 결혼에 성공했으며 부동산 투자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녀들이 빨리 떠나야겠다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학교조차 내가 일하던 학교보다는 '큰 학교'였다. 나는 내가 발령받은 학교가 비록 외지고 열악한 여건에 처했지만 그곳 역시 대한민국이었고, 학생들이 있는 소중한 공동체라 여겼기에 경멸하고 휙 떠나기보단 그곳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찾아 정을 붙이고 긴 시간을 그곳의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내 전망은 틀렸고 그녀들의 전망은 옳았던 것이다. 지금 그녀들과 나의 사회적 신분은 같은 교사임에도 크게 차이가 있다.
ROTC 때문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을 때, 경인교대 경기캠퍼스도 참 답이 없는 외진 지역에 있는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구글맵을 보면 알 수 있다) 안양1번가가 가까워 패스트푸드점이라곤 롯데리아 밖에 없었던 당시 본가 주변보다 안양1번가와 신림동 주변으로 뻗는 대중교통망까지 포함한 기숙사 주변이 비교적 도회적인 공간이라 뭔가 좋은 곳으로 옮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전형적인 경기도 힐 빌리(Hillbilly)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공간적 운수가 틔었던 군대 시절엔 부대가 남양주 덕소역 근처에 있었는데, 당시 본가에서와는 달리 강남 및 온갖 서울 중심지까지 금방 통하는 그때의 공간적 입지는 마치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았다.
내 삶의 대부분은 내게 주어진 공간적 한계와의 씨름이었다. 나는 그것을 SNS나 인터넷에서의 활동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SNS는 내가 유달리 고립된 위치의 폐쇄적 소규모 직장에 제한될 때, 만나기 힘든 명사들과 교류할 수 있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하면서 약간의 용돈벌이도 제공하는 기회들을 제공했다. 나는 물리적 공간의 제한으로 제약된 핸디캡을 어떻게든 보충하려고 했다. 그것은 대개 IT 기술이 창출한 가상공간을 통한 노력이었다. 정보통신 기술이 지금과 같이 발전한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방향의 돌파구 탐색은 상상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예 기술 그 자체를 이용해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원격대학으로의 진학과 컴퓨터과학 공부였다. 나는 통역장교를 할 때 농담삼아 내가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웬만한 지식들은 다 위키피디아에서 온 것이니 위키피디아 대학을 나온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오픈소스 교육에 대한 내 원초적 이해의 형태였다. 위키피디아 유니버시티 드립은 내가 VIP 통역을 맡든 원어민 강사와 이야기를 하든 늘 하는 소리였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교육 모델이 꼭 관심 있는 인문사회 분야 백과사전 검색·독해에 그칠 필요가 없다. MIT가 오픈 코스웨어 강의를 전 세계에 제공해 인터넷 통하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도 MIT 오픈소스 콘텐츠로 공부할 수 있는 시대다. 세계 최고 콘텐츠의 강의들을 공간의 한계를 넘어 누릴 수 있는 정보 인프라가 있는 시대다. 유튜브에는 온갖 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해답과 요령을 알려주는 콘텐츠들이 무한히 펼쳐져 있다. 이미 세상은 마음만 먹으면 IT 기술과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양질의 교육 콘텐츠와 연결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예 SNS 플랫폼 안에서의 헤비 유저에 그치지 말고, 그러한 네트워크에 기반한 가상공간을 창출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떻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부의 추월차선'을 쓴 엠제이 드마코도 지역 도서관에 처박혀 코딩을 배워 자기사업을 일군 사람이다. 더 이상 중세 농노처럼 토지에 긴박될 필요도 없고, 동아시아 농경민처럼 땅을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이제 전 세계에 공유된 자원을 활용하고 인공지능의 힘을 쓰면 공간을 창출하여 공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래서 나는 원격대학을 선택해 그중에서도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하여 오픈소스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공간의 한계를 넘는다.' 이것은 앞으로 내가 제공할 모든 프로덕트를 관통하는 비전이 될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로서의 IT는 본질 자체가 공간의 한계를 넘어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종류의 시민 네트워크 형성을 돕는 SNS 플랫폼 기업들이 될 수 있고, 시빅 해킹의 영역에서는 연락이 끊긴 재난 환경에서 대피 센터와 필수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공유하고 연락 수단을 회복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전쟁 기술의 영역에서는 적을 탐지하고 아군 간의 통신선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리적 공간을 넘어 이전에 없었던 사업공간을 창출하기도 하고 그를 통해 아마존이나 쿠팡처럼 물리적 공간으로 지배력을 확장하기도 한다.
그동안 나처럼 공간의 핸디캡, 공간의 디스어드밴티지에서 신음했던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프로덕트를 제공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진정 약자에게 기회와 힘을 주는 것은 새로운 사업 영토까지 진출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었다. 당장 관사조차 없어 학교 창고에서 살아야 하는 궁벽한 위치에 처한 청년 교사에게 커피와 생필품을 제공한 시골 매점들이 그런 존재였고, 급하게 삶의 불행한 처지에 처해 먹고 살 방도를 찾을 수 없는 이에게 최저임금과 교통수단, '안정적인' 일감을 제공하는 물류센터가 그런 존재였다. 기업과 시장은 약자에게 기회를 주는 곳이다. 그것은 평등으로 열린 길이기도 하다. 이제 공간은 질곡이 아니다. 그걸 뛰어넘을 수 있게 과학기술은 진보하고 있다. 순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처한 땅을 딛고, 그 한계를 뛰어넘어 더 좋은 세상으로 웅비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비전을 나누고 더 좋은 현실을 제공하고 싶다. 이것이 내 '공간의 한계를 넘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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