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곧 자유다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린아이도 즉시 이해할 수 있게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지배받지 않는 것? 그럼 정의로운 권력에 지배받는 것은 자유일까? 권력으로부터 지배받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의무와 책임으로 얽힌 군주와의 쌍무적 계약관계인 지배·복종의 중세 봉건제도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책임을 운운하며 윽박지르는 권력을 상상해보자면 책임을 내세우는 자유의 제한은 그저 제한일 뿐 자유의 본질이라고 보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로크는 자유의 문제를 사회계약론으로 해결했다. 서로의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중재자로서의 정부를 고안한 것이다. 이때 정부는 공통 권력의 부재, 무정부성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불안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에게 자연권을 양도받는다. 이 자연권은 인간이 이성에 의해 부여된 천부인권으로 생명, 자유, 그리고 재산권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재산권은 편리할 때 아무렇게나 정치 권력에 의해 제한받아도 되는 여러 권리 중 하나인 것이 아니라 다른 기본권들의 전제 조건이 되는 핵심 천부인권이 되는 것이다. 사유재산이 정의의 기반이 되어 사회를 어떻게 규율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로크 외에도 로버트 노직, 밀턴 프리드먼 같은 학자의 이론을 참고할 수 있다.
  우리 한국인은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탓에 사(私)가 들어가는 말에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사욕(私慾)이라는 것은 극복해야 하는 사사로운 욕구일 뿐이며 인간을 부도덕으로 내모는 것이고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나누지 못할망정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추한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교의 한계와 달리 사욕 그 자체이자 사욕의 터전, 기반이 되는 사유재산을 인간이 지켜야 하는 핵심 가치라고 생각한 서구 문명의 지향은 특별한 데가 있다. 사유재산의 가치에 대한 서구의 특수한 이해는 자본주의·과학기술의 혁신과 세계 지배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서구가 부강해졌으니 서구의 가치 체계는 다 옳다 이런 단순한 결과론이 아니라, 사유재산에 대한 서구의 개념 정의는 개인의 인권과 존엄에 대한 새로운 장을 인류 사회에 제공한 것이다. 경제적, 군사적, 기술적 부강함은 이러한 보편성에 자연스럽게 따라온 것이라 보아야 한다.

  사유재산은 단순히 자기가 소유한 물질이라는 정의로 끝나지 않는다. 사유재산은 곧 그 사람의 세계 그 자체이다. 손바닥만한 땅 한 뙈기를 지키기 위해 소농(小農)들이 싸움터에 나서는 모습, 사유재산을 몰수·약탈하기 위해 지주를 죄인으로 몰아 인민재판으로 처형하는 좌익 폭도들에게 고문과 괴롭힘을 받다 자식에게 숨겨둔 금덩이를 쥐어주며 탈출하라 유언을 남기는 북한 주민의 모습 등은 단순히 적은 재산에 연연하며 평등한 사회주의 사회 이념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탐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존엄 그 자체였다. 사유재산의 침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침범받을 수 없는 개인의 영역과 세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것이다. 
  기업체를 단순히 장부에 찍힌 액수만큼의 단순한 재산이라 보는 권력자들은 그 기업을 자신들이 '공익'이라 생각하는 사업에 편리하게 갖다 쓰고 사적인 이익을 환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은 여러 행위자의 출자로 형성된 사유재산으로 창업자의 정신과 가치가 표현된 작은 세계이기도 하다. 그런 기업에 대해 함부로 참견하고 평가질하고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기업이 뭔지에 대한 이해 없이 조선시대 신분제의 관성으로 '천한 장사치', '장돌뱅이'를 다루듯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자유란, 이런 사유재산이 지켜지며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시장이 있어야 성립한다. 즉, 시장이 곧 자유이다. 아무리 현란한 언어로 대의명분을 만들어내고 문화적 덕목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자유가 성립할 수 없다. 결국 공동체가 추구하는 종교의 독재, 전통·인습의 독재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성리학 철학에 몰두해 문인에 의해 다스려지는 이상향을 추구하며 훌륭한 기록 문명을 이루어내고 여러 제도를 만들어냈다고 하지만 결국 노비제와 궁핍한 농촌 경제에 의존하는 폐쇄적이고 낙후된 사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던 것은 결국 시장의 부재(不在)에 그 이유가 있던 것이다.
   자기가 가진 재산의 영역에서 사적 영역이란 개념이 배출된다. 개념 정의부터가 다분히 철학적인 이해를 필요로 하는 사적인 영역은커녕, 당장 눈에 보이는 물질적 재산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공간이 자유로울 리가 없다.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쓰는 지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을 받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자유로운 세상일 리 없다. 내 본질적인 권리의 영역인 재산권 행사를 일일이 남의 평가에 눈치를 보며 남의 도덕관과 분위기 따라 해야하는 세상이 자유로운 세상일 리 없다. 자유로운 거래와 사유재산의 보호가 이루어지는 시장의 존재, 그것이 곧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가 자유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은 늘 이렇게 시장과 함께 가야한다. 그러나 자유를 책에서만 배우고 추상적인 설명으로만 배우다 보니 이해도 안 되고 생활에 와 닿지가 않는다. 자유란 게 꼭 필요한 지 이해가 되지 않고(사실 인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유 없이 권력자의 전제 아래 보냈다) 오히려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과 방종만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은 극우파들이 여러 가치 중 하나인 자유만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이라 부적절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자유 민주주의란 말 자체가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나 쓰는 말이라 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이해 수준은 이렇게 처참하다. 자유란 것이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개념이 아니라 참여·생태·환경 이런 표현들과 동격의 위상을 갖는다는 것이다.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 '1년 하고 하루를 지내면 도시의 공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Stadtluft macht frei nach Jahrund Tag)'는 중세 격언이 있다. 도시의 자유에 대한 중세 법률을 요약한 것이다. 로마의 멸망 이후 동양과 같이 압도적인 전제 국가가 패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치체로 쪼개졌던 유럽에서는 도시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곤 했다. 
  자유로운 상거래를 위해 도시를 형성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은 도시 공화국의 대표를 선출했으며 스스로 무장해 봉건 영주들과 싸워 여러 양보를 얻어냈다. 농노들은 자유를 찾아 종종 도시로 탈주했다. 이 도시는 지금과 같은 수준은 결코 아니지만, 어쨌든 시장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이때의 자유란 시장에서의 거래를 위한 기본 규약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도시의 자유는 부르주아지들이 주도하는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시민들의 자유로 확대되었다. 물론 프랑스 혁명은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산악파와 같은 과격 세력에 의해 오히려 이전보다 폭력적인 '폭도들의 전제 사회'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시장이 없는 곳엔 권력자의 횡포와 독점과 신분제, 숙명처럼 주어지는 것들에 수동적으로 힘 없이 순응해야만 하는 소극적 삶만이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기회와 자유로운 활동 영역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더 시장이 발달한 곳을 향해 탈주한다.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찾은 탈북자들이 그렇고, 빈곤과 인습과 싸우다 코리아드림·아메리카드림을 찾아 선진 경제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그렇다. 수요와 공급이 자유롭게 만나는 곳에 거래가 있고, 거래엔 언제나 기회와 자유가 따른다. 근대적 삶이란 어쩌면 더 나은 거래를 찾아 떠도는 자유의 여정으로 쓰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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