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리와 양키센스

  예전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두고 '골계미가 있다', '해학의 민족이다'라고 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들고 힘든 풍파를 거치다 보니, 실없는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힘겹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이랑 비교도 되지 않는 억압과 고된 환경 속에 있던 조상들은 더했겠지. 그런 종류의 농담들은 때론 당장의 힘듦을 견딜 정신의 여백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일견 복잡해보이는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할 통찰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너무 단순한 농담일지라도, 그것이 복잡한 생각으로 꽉차 소모되고 있는 정신을 쉬게 해줄테니까.
  프랑스에도 '에스프리'란 표현이 있고, 영미권에도 '양키센스'라는 표현이 있다. 양키센스야 우리가 헐리우드나 미드, 영드 등으로 영미권 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있으니 어느 정도 익숙한 풍류라 볼 수 있겠지만 에스프리는 생소하다. 나도 교대 다니던 시절 교양으로 들었던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 시간 참고도서로 소개된 '프렌치 프랑스'를 읽어 알게 된 개념이다. '프렌치 프랑스'는 하버드 석학이 분석한 프랑스의 문화에 대한 아주 재밌는 책인데 내가 그 당시에는 강의계획서를 아주 꼼꼼이 읽고 주 도서에서 참고도서까지 다 사서 읽어봤던 사람이라 그것이 아주 도움이 됐다.
  에스프리든 양키센스든 우리나라 대화 문화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코드이다. 에스프리는 일종의 지적 순발력을 과시하는 태도인데, 여기에는 약간의 비아냥과 조롱이 섞여있을 수 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데카르트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있고, 아무래도 살롱과 카페를 중심으로 백과전서학파를 비롯한 대륙계 계몽주의 전통을 이끈 이들이다 보니 지적인 능력을 공격적으로 과시하는 문화가 있었나보다. 아직까지도 토론을 매우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인신공격에 가까운 언어 공격이 날아와도 이를 재빠르게 캐치해서 재치있게 되받아치는 능력을 중요시하고 말의 논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 그러지 못하는 논객이나 정치인은 경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양키센스는 일종의 미국식 코드인데 내가 강조하는 부분은 에스프리처럼 일종의 대화 문화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나라든 과장하는 대화 문화가 없으랴먄 미국인들 특유의 유쾌한 과장과 상황을 비트는 유머가 특징이다. 양키센스와 에스프리의 차이는 양키센스는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는 것을 피하고 상황을 이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성의 문명 질서 안에서 문화적 경쟁을 공격적으로 하던 프랑스와 개척지에서 스스로 공동체 질서를 만들고 실용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강구하던 미국의 차이가 아닐까 짐작한다.
  에스프리든 양키센스든 한국적 대화 상황에서 섣불리 적용했다가는 대화 상대방에 따라 '저 사람은 왜 이 상황에서 저런 식으로 말하지' 같은 빈축을 살 가능성이 있다. 꼭 모두의 대화 코드에 맞출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 문화에는 상대적인 차이가 있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나 역시 에스프리와 양키센스를 어느 정도 동경해왔지만 나이가 들수록 외국인을 상대로 지적 교류를 하는 게 아닌 이상 굳이 내가 바라는 스타일보단 한국의 관습적인 맥락에 따르는 것이 더 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물론 대화할 때마다 그런 것을 신경써야 하는 상대방보다는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소회를 풀 수 있는 친구들 위주로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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