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하나만 있으면 학교를 만들 수 있다
국회의원과 검찰은 한 명이 한 개의 헌법기관이다. 이들이 다른 공직자를 대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사회에 당당히 자기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제도적 지위에 있다. 국회의원과 검찰은 막강한 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높으신 분들이니 그런 거겠지만, 나는 초등교사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물론 그 높으신 분들과 일개 초등교사가 같은 반열에 있다는 발칙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명이 한 개의 학교이자 한 개의 교육과정인 것이다. 일명 '교사기관론'이라 하겠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교과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중·고등학교 교사들과는 다르게, 교과전문성보다는 자신이 담당하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을 하나의 교육 문제로 삼아 다교과적 접근으로 1년 교육과정 살이를 한다는 것이 좀 다르다. 자기만의 교과를 갖고 있지 못하다 보니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지는 돌봄노동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역시나 자기만의 교과를 가지지 못하는 문제와 한계로 안정적인 교육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 힘들어 인플루언서로 여기저기 잡상인 외판원처럼 다니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타박을 듣기도 한다. 이처럼 자기 교과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차이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자기 교과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 다학문적 접근을 포함한 적절한 교육적 통섭으로 이어진다면 초등학교 교사들은 한 명이 하나의 학교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영화 <선생 김봉두>와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보자. 이 두 영화는 교육 여건이 열악한 낙후된 시골 환경의 복식학급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학교들이 중고등학교였다면 이야기는 전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중학교만 하더라도 주요교과의 선생님들을 과목별로 한 명씩은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교과목은 위계의 수준이 꽤 높아 교사가 자기 영역 바깥의 다른 교과를 가르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초등학교는 선생님 한 명이 모든 교과를 가르친다. 그래서 학교는 교육자원이 유통되는 행정 단위와 아이들이 배우는 건물의 이름일 뿐, 사실상 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곧 학교나 다름이 없다. 김봉두 선생님은 징계받고 쫓겨갔을지언정 진짜 선생님이기나 하지,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 나오는 웨이민치는 어쩌다 보니 시골 선생님의 대리 교사 역할을 맡게 된 만 열세살의 소녀에 불과하다. 이 두 영화는 김봉두, 웨이와 학생들의 만남을 그리며 학교란 무엇이고 교육이란 무엇인지 본질을 일깨운다.
나 역시 한 학년에 한 학급밖에 없는 작은 학교에서만 일을 해봤다. 한 명 한 명의 교사가 큰 책임감을 갖고 학년 교육과정을 모두 짜고,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해야만 하는 곳들이었다. 교사 한 명당 너무 많은 일을 해야돼서 힘에 부친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만큼 내가 생각하는대로 교육과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때로 비품이 모자라거나 학교 시설이 미비하거나 등등의 이유로 학습환경의 한계가 크면 대안활동을 급조해야 하기도 했다. 이들이 곧 하나의 학년이었고 학생들에겐 학교 그 자체였다.
물론 학교는 교사 한 명만 있다고 굴러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애들이 밥도 먹어야 하고, 학교라는 행정 단위가 적절히 기능하기 위해선 그에 수반되는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분들이 폭넓게 존재해야 한다. 그분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교사는 교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학교를 생각할 때(일종의 실험을 한다고 생각해보고 가정해보자) 학교의 본질은 국가에서 규정한 행정 단위도 아니고 운동장과 교실이 딸린 건물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 그 자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천장이 있는 공간, 동굴 같은 곳을 찾아 칠판 비슷한 것을 놓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한다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6·25 전쟁 때는 천막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역사가 있다.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도 흘러간 옛말이 된 AI대전환의 시대다. 내가 기억하는 범위 안에서 90년대부터 늘 반복되는 말이지만 교육과 학습의 본질이 바뀐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문명 차원의 대변동을 이끌고 있고, 이에 어떻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교육상을 마련할 수 있는지가 교육계의 과제일 것이다. 교과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전통적인 교과 교수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서 교육의 본질을 생각해보고, 일상에서 교과의 틀을 넘어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다교과적, 간학문적 접근을 하는 초등교사들의 방식은 새로운 시대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잠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를 전후해 자유롭게 기동할 수 있는 공간이 아무래도 교과교육에 묶여있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에 비해 초등 선생님들에게 더 많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도 지금 못지않은 문명의 격변기였다. 농경 문명과 중화 조공책봉 외교의 질서에서 산업 문명과 제국주의의 세계관과 질서로 거칠게 바뀌는 전환 시대에 대한제국은 국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때 지역에선 낡은 교육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에 적합한 방식으로 신식 교육을 할 수 있는 학교를 세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방관들이 지역 유지들의 찬조를 모아 사립학교를 세우는 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때 가장 중요했던 문제는 어디서 어떤 선생님들을 데리고 오느냐였다. 이승만과 김구가 다 이 당시에 선생님이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우남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나와 정동교회와 나란히 조선 기독교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상동교회에서 세운 상동청년학원의 교장으로 모셔졌고, 동학에서 의병투쟁, 신민회 활동까지 다양한 사회 경험을 거쳤던 백범 김구는 황해도의 사립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떤 학문을 배운, 어떤 배경을 가진 선생님을 모셔 오느냐가 이들 구한말 신식 사립학교의 가장 큰 과제였다. 선생님의 이동에 따라 학생이 학교를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의욕적인 문명개화의 지사들과 학생들과의 만남이 곧 신교육이었고 학교 그 자체였다.
흘러간 전환시대의 풍경은 새로운 전환시대에도 영감을 주는 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생 하나만 있으면 학교를 세울 수 있다. 문제는 어떤 선생님이냐에 있으니 선생님이야말로 하나의 기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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