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그러는지 한국에서만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을 인신공격할 때 '그 사람은 열등감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열등감을 느끼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아주 답 없이 비참하고 한심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깔보고 내려치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는 '그 사람은 피해의식이 있어'라는 말도 있다. 피해 망상이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무언가 피해를 입었든 입지 않았든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아주 비참하고 한심한 사람이라는 듯이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인간의 내면이라는 건 단순히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일도양단할 수 있는게 아니라 딱 잘라서 말하기 힘든 복합적인 구성체라는 것을 봤을 때 과격할 정도의 단순론이 아닌가 하는 반감이 솟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진지하게 믿는(전통윤리로서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폐쇄형 농경국가의 전통을 가진 나라답게, 우리나라는 열등감을 가지지 않은 사람,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은 사람, 콤플렉스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원만한 인격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라 여겨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분들은 깊은 내면의 힘을 갖춘 사람들로 같이 교류하면 정신이 평온해지는 매력을 갖춘 훌륭한 분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폐쇄형 농경국이 아닌 팽창형 제국의 지도자들이나, 혼란기의 영웅들, 사회에 의미 있는 혁신을 이루는 자들은 열등감과 콤플렉스와 같은 정신적 찌꺼기가 없는 이들보다는 이런저런 정신의 굴곡으로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열등감이 없어야 한다',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피해의식이 없어야 한다' 이런 강박 자체가 일종의 거세 기제처럼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난쟁이로서의 열등감과 많은 독서로 단련한 지성이 캐릭터의 매력을 이루는 왕좌의 게임 드라마의 티리온 라니스터>
유일신이든 그 비슷한 뭐가 됐든 절대자를 믿지 않는 한국과 같은 문화 환경에서는, 인간이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의식이 많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포용하지 못하고 뭐든 꼬투리 잡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거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면 또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알 바냐고 들이받으면 그만이련만, 한국은 너무나 오랫동안 폐쇄형 농경국가였기에 타인의 품평을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 평가로 받아들이는 조건이 작용한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강한 자기검열과 자기학대의 기제가 크게 작동한다. 내외면 모두 완전무결한 재자가인(才子佳人)이 아닌 스스로를 지독하게 괴롭히게 된다.
인간을 이루는 수많은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보다 정확히는 가치 중립적이거나 생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평면적으로 좋은 거, 나쁜 거로 일도양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것들은 다 없어져야 하니 열등감도 컴플렉스도 피해의식도 없어야 된다는 것이다. 동양철학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가 사안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단순히 거칠게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측면을 복합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인데 동양에 속하는 한국에서 이 부분이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반면 서구에선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의 불완전함, 인간 정신과 심리의 취약함을 보다 너그럽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고대 그리스 영웅들만 보더라도 다양한 열등감과 다양한 인격적 결함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과 업적을 거두게 되는 것도 그러한 열등감으로 인한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나오는 비극의 법칙에 따라 그러한 열등감으로 비극적 결말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같은 시대의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역사적 인물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로 꼽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인물이 열등감으로 추동된 모험과 도전으로 세계사에 영원히 남을 업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 비극적 가족사에서 온 정신적 불안정 등이 그의 정복사업 과시와 치기 어린 영웅 연출로 이어졌으나 그것이 그의 위대함을 섣불리 내려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비슷한 열등감에서 출발한 동기로 큰 도전과 큰 업적을 이룬 역사적 인물들에게도 오로지 열등감을 이유로 그 행적을 깔보고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람 그거 열등감 때문이야' 라면서 단순히 일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인간의 복합적 내면의 작용이 동기가 되어 나온 인간의 도전과 성취 자체를 내면의 열등감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그 태도가 그 사람이 비웃는 열등감보다 더 못난 것이다. 우리나라는 도전보다 업적보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헨리 포드, 스티브 잡스, 피터 틸, 일론 머스크가 내면이 성숙하고 수신제가하고 막 열등감도 콤플렉스도 없이 정신 한 군데 모난 데 없이 원만한 사람이라 도전하고 큰 업적을 성취했다고 보는가?
나 스스로도 열등감이 있다. 사람은 다양한 이유로 열등감을 가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채 출신이 아니라서, 때 맞게 세대 과업을 남 보란듯이 성취하지 못해서, 키 작고 못생겨서, 가난해서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물론 그것에 초탈하고 초월하는 내면의 힘을 갖춰 정신적 건강함을 이루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런 열등감을 삶과 세계와 싸워 도전하고 업적을 성취하는 동력으로 삼는다면 이는 한 사회와 인류 전체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다. 언제나 문제는 열등감 그 자체가 아니라 열등감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어떤 식으로 작용하냐에 있다. 거세되지 않은 열등감은 위대함, greatness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내 열등감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이것을 없애고 싶지도 않다. 실제로 그러한 열등감, 비주류 의식을 강한 나의 경쟁력과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 도전을 계속하고 업적을 쌓아나가고 싶을 뿐이다. 그걸 안 좋게 보는 건 '배고픈 시절을 잊은 양반 근성'을 좋아하는 우리의 문화 환경도 어느 정도 작용하기 때문이리라. 그런걸 조선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열등감을 중요시하는 아들러 심리학까지 끌어올 것 없이, 비주류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열등감과 부진한 조건들 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노력과 도전 끝에 대단한 업적을 성취해 이 나라를 바꾸어 왔는지 한국현대사만 보더라도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이승만의 열등감, 박정희의 열등감 없이 이 나라가 생겨나 지금과 같은 혁명적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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