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충과 투키디데스, 마키아벨리, 베네데토 크로체
예전에 아는 동생에게 이대근 교수의 '귀속재산 연구'를 추천하면서 '역사를 깊이 살피는 것에서 오는 지혜와 교훈을 우습게 봐선 안된다'고 했다가 '그런 건 법 철학 해야한다는 것과 다름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빈정거림을 듣고 크게 마음을 상했던 적이 있다. 그 동생은 서울대에서 정책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컴퓨팅 관련한 것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크게 봤을 땐 나와 전공이 겹치는 부분도 없다고는 못하겠다.
'역사충들은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이야기나 한다', '회귀분석 모델 하나 적용되지 않은 걸 연구라고 하지 않는다(분류든 회귀든 군집화든 뭐든 안 들어갔으니 이대근의 '귀속재산 연구' 같은 역사 텍스트 따위는 연구라 할 수 없다)', '똑똑한 사람은 데이터를 본다(대충 역사충인 너는 안 똑똑하다는 이야기다)'고 사람들 다 있는데서 말하는 앞에서 그래도 나름 실증 자료 중심의 역사 해석을 강조해 온 나로서는 뭔가 억울하면서도, 대학원에서 체계적으로 사회과학 데이터 분석에 대해 훈련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라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아 무시 당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다. 막 서른살이 되었을 때 정도엔 대학원을 가기는 갔어야 했나 보다. 더 무시 안 당하려면 마흔 전에는 컴퓨터 사이언스로 대학원에 들어가야겠다는 반성이 인다.
역사충으로서 역사를 깊이 살피는 것에서 오는 지혜와 교훈에 대해 항변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장교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뭐든 군사와 비교해 이해하는 것이 편할 때가 많다. 실제로 군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복잡한 조직이고 여러 기능이 통합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곳이라 여러 다른 사회 분야에 참고가 되는 부분이 많다. 팔란티어나 안두릴처럼 인공지능과 데이터과학으로 군사 기능의 많은 부분을 보강하여 작전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킬 순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기술 성과를 군에 대폭 도입하고 IT맨들을 기술 장교로 임관하여 군에서 IT 기술을 배우고 대폭 수용해도 여전히 장교들은 전사(戰史)를 통해 교리를 학습한다.
이것은 그들이 어리석은 역사충에 답 없는 역사덕후라 그런 것이 아니라, AI와 데이터과학이 결국 최종 의사결정을 내려야하는 인간의 본질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부분부분 분산·분리되어 있는 각종 행동원칙들과 지식들이 특정 전투 사례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또는 실패하였는지 알려주고 특정 상황 요소에 어떤 전쟁의 어떤 전투에서 어떤 지휘관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 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AI는 즉각즉각 학습 알고리즘에 의해 '최적해'를 계산하지만 전사 학습은 왜 인간이 최적값을 찾지 못해 한계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주며, 현장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한 기능과 요소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0년 전쟁 이래 서양의 군사혁명은 아예 군대의 성격을 변화시킬 정도의 규모로 반복하여 일어났지만, 결국 전쟁이라는 인간의 행위를 공부하고 훈련하는 군인의 입장에서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본질은 데이터과학을 구성하는 모형들이 아니라 과거 그 자체를 돌아보는 공부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오히려 이러한 전사 교육을 등한시 하고, 피상적인 기술 숭배와 첨단무기 전시에만 군이 집중한다면 결국 간부의 질은 형편 없이 떨어지고, 군의 실질적인 전투력은 약화될 것이다.
기업 경영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경영학도들이 답 없는 멍청한 역사 매니아들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케이스 스터디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빅데이터의 이해와 활용이나 오픈소스 기반 데이터 분석 같은 수업에서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머신러닝을 통한 데이터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 지 실제 사례를 통해 배웠고, 딥러닝 라이브러리를 통해 간단한 분석을 하는 실습을 해보기도 했다. 인간이 얼마나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됐고,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규정된 부분이 아니라도 고도의 예측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해 경이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기업들이 구체적으로 부딪혔던 현장의 성격과 한계가 무엇이었고, 그래서 경영자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경영전략이 큰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케이스 스터디의 영역이다. 데이터과학은 이에 대한 이해 능력을 크게 늘릴 수 있지만, 이러한 케이스 스터디 접근이 쓸데없는 뭘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간 낭비 정도로만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결국 남들이 다 챙겨주고 보호해주는 상아탑 안에서의 몽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충으로서 단 세 명의 역사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현재의 유명한 역사학자들보단 고전적으로 투키디데스와 마키아벨리, 베네데토 크로체 3명을 추천하고 싶다. 우선, 내가 역사충이 된 이유도 현실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크게 키우고 싶은 어린 시절의 마음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는 역사의 현실주의적 이해와 독해를 부르짖은 사람이고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정치를 분리하여 피렌체의 과제를 로마사에서의 교훈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 사람이며, 베네네토 크로체는 역사를 위한 역사가 아니라 현재를 위한 역사를 강조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 사람을 맹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세 사람의 접근법과 사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영감을 제공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파라는 사람들조차 역사 해석에 대한 담론을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며 에드워드 카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충 똑똑한 척 하고 끝내는 것을 보면 참 개탄스럽다. 에드워드 카가 친소적인 지식인으로 좌파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수학의 정석 첫 장인 집합 문제만 푸는 것처럼 역사 교과 참고서 첫 장에 나오는게 에드워드 카고 어딘가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대충 맞춰주는 것 같으니 이게 정답이겠거니 하는 얄팍한 사고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정치적인 우파가 아니더라도 현실주의 세력으로서, 근대화 세력으로서 자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에드워드 핼리트 카보다 먼저 현실을 다루는 이해 능력으로서의 역사를 강조하는 다른 사람들을 인용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서 글에서도 쓴 바가 있지만, 역사가 누구를 용서하니 마니, 역사가 누구를 심판하니 하는 것은 원시인의 종교적 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원전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도 그렇게 생각했다. 투키디데스는 역사가이기 이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한 아테네의 장군이기도 했다. 크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군인이 아니라면, 피 어린 전장을 경험하고 배운 군인들은 대개 현실주의적 지향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투키디데스는 역사란 종교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과장된 시인의 언어가 아니라 검증된 사실의 언어로 쓰여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공자의 춘추필법이나 사마천의 사기 서술보다 훨씬 진보되고 우리에게 현실을 살아가는 힘을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외교·안보를 맡은 서기관이었다. 16세기의 피렌체는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지중해식 통상 질서에 기반을 둔 해양 도시국가들이 영토국가에 맞서 다양한 안보적 과제를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일본의 전국시대 이상의 복잡성을 수반하면서도 철두철미하게 현실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환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는 교재로서 역사가 쓰였다. 투키디데스와 마키아벨리가 결국 자신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대단하게 해결하여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로서 이 둘의 텍스트를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큰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쓸데없는 잔소리나 좋아하는 역사충이라서가 아니라, 이 둘은 현실주의자가 현실로부터 배우기 위해선 어떤 인식론적 틀과 삶의 태도, 관점을 가져야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네데토 크로체는 이 둘이랑은 사뭇 다르다. 현대인이라는 관점에서도 그렇고, 이 사람은 완전히 현실에 매몰되어 있다기보다는 '관념', '사고'로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5세대 전쟁, 인지전의 관점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를 두고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의 정신 구조와 사고를 어떻게 이해하고 지켜내느냐를 바라보는 데는 크로체를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우파들이 크로체를 모르고 카만을 인용한다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 없다.
크로체는 모든 참된 역사는 현대사이며, 현재의 문제의식으로 과거를 어떻게 의미 있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과거 수집만을 위한 역사충이 아니라 결국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필요한 자료가 중요하다면 크로체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크로체는 '역사행동으로서의 역사'라는 말을 했는데 이는 역사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실천을 동반한다는 이야기다. 파시스트가 이탈리아의 제도 정치를 잠식하는 과정에서 크로체가 자유주의자로서 어떻게 오늘의 자유를 지켜낼 것이냐를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길게 다 이야기하기는 그렇고, 크로체의 저서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크로체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 등을 만들고 역사를 사법의 문제로 치환하여 과거사를 단죄해놓고,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또 국가가 역사 해석을 독점하는 것이라 반대한다는 우스꽝스러운 모순에 빠진 채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왜 아직까지도 무서울 정도로 치열하게 역사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이해 못할 것도 없다. 그것은 단순히 역사충들이 답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자원을 둘러싼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길게 이야기했지만, 사론(史論)의 문제일 뿐 역사충 자체로는 죄가 없다는 변명을 하고 싶었다. 난 여전히 역사는 공부가 필요한 분야이며, '역사를 깊이 살피는 것에서 오는 지혜와 교훈을 우습게 봐선 안된다'는 입장을 바꿀 생각이 아주 조금도 없다. 컴퓨터과학도로서 데이터과학은 계속 공부할 생각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쓸데 없는 행동이 아니라 컴퓨터과학과 데이터과학에 기반한 서비스 개발이 더 완전하게 기능할 수 있게 돕는 행동일 것이라 기대한다. 왜냐면 역사는 결국 남이 심판되기를 바라거나 남을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상징물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는 불멸의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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