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좌익이다?
예전(영화 '파묘' 유행하던 2024년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는다) 페이스북에서 유성호 씨가 한국의 우파가 근대성을 지나칠 정도로 숭배하며 전근대적인 것을 배척하는 것을 '문화적으로 매우 후진 태도'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때, 유성호 씨는 세계적으로 오히려 우파보다 좌파가 더 근대성과 근대화를 강조한다고 우리나라의 우파가 근대성에 천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우파가 집단주의 군사정권에서 배양된 존재라 그 성격이 좌파적이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우파들의 역사 인식과 문화 비평, 시사 접근에서 근대성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유치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파들이 근대성을 21세기가 4분의 1 지점을 지난 지금까지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그만한 역사적, 현실적 이유가 있다. 또한 좌파 사회주의 국가들이 '정상적인' 근대화를 이룬 서구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전근대에 대한 단절과 근대성을 훨씬 노골적으로 강조한 것도 그들이 '무리한 방식으로' 근대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근대성이 좌파들의 주제라는 것은 부당한 왜곡이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근대성이 무엇이냐를 규정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그러한 근대성을 그들의 현실이 과연 달성했느냐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의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근대성은 물질을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관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고도로 수치화된 정보, 대량으로 수집하여 잘 관리되는 통계 자료와 이의 바탕이 되는 과학적 인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이것이 고도로 제도화되어야 근대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엔 개인의 발견과 자본주의 시장 질서의 형성을 필요로 하며, 이 모든 것은 절대 구호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좌파 정권에서 오히려 전근대에 대한 부정과 근대의 강조가 이루어지는 것은 인위적인 국가 정치로 이러한 근대성을 빠르게 달성하려다 보니 공격적인 구호가 강조되는 것에 가깝다. 정부 주도로 근대화를 추진했던 독일, 일본과 같은 후발 근대화 국가들이나 당-정부의 주도로 '하이모던'을 추구했던 소련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달성하고 가시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이런 후발 근대화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전근대 습속에 대한 더 거센 공격과 부정이 잇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성 추구, 근대화 강조 그 자체를 좌파의 속성이라 치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류다. 이런 과정을 압축된 시기에 정부 주도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느냐 민간 사회에서 시장 작용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진화적 변화로 이루어졌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국 전근대의 한계를 끊고 근대화로 나아간 것은 모든 근대 국가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식 하이모던의 반대 지점에 있다고 볼 미국과 영국의 근대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들이 자체적인 지식 사회에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비과학과 비능률, 비합리적 과거 숭배와 인습의 질곡을 끊어내고(폭력적으로 모든 관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자체적인 근대화 문명을 이루었는지 생각하면 우파가 근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근대이고 비과학이라고 전통 문화 모티프를 모두 악마화하고 멀리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화적 야만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우파 사회는 이런 부분에서 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함을 넘어서 그 자체로 근대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근대성과 근대사회란 전통문화를 '근대적'으로 보존·관리·계승한다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국가 신도(神道)나 스코틀랜드의 킬트 같이 근대 정치체의 정치적 목적에서 '만들어진 전통'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과거 위인에 대한 현창과 기념이 마구 이루어지고 전통문화 복원과 동·서양 고전학술에 대한 연구가 아주 활발히 일어났던 것도 근대화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박정희 정권 때였다.
무속이 비과학이고 조선시대 전통문화가 주목 받는 것이 전근대적이라 문화 상품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근대적이지 못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특히 조선왕조가 전근대 왕조였다는 이유만으로 외국 관광객들이 한복을 입고 경복궁 관광을 즐기고 잘생긴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문화콘텐츠를 향유하는 것을 미개한 조선을 미화했다고 길길이 날뛰는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을 어떡해야 하나 싶다. 진정한 근대화 세력이라면 전통과 전근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우리 근대적 공동체에 이롭게 수용하고 잘 상품화 해 이윤을 남길 것인가 고민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무속이든 조선시대든 그저 표현 소재일 뿐인 것이고 문화상품으로써 보존의 대상일 뿐이다.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적인 필드에서, 또는 개인의 중요한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결심하는 상황에서, 무속과 조선의 전근대적 습속이 우리의 사고에 비합리성을 더해 문제해결 과정을 왜곡하고 전체적 사회 비용을 늘리느냐이다. 근대냐 전근대냐를 따지는 메타 비평은 문화상품의 소재를 따질 때가 아니라 이러한 문제 해결의 합리성을 따지는데 쓰여야 한다.
p.s. 파묘의 주제와 메시지가 전근대적인 건 맞긴 하더라. 일단 영화가 너무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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