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을 기념하는 것은 어리석은 우상 숭배일까
아무래도 정치의 양극화가 심하게 전개되다 보니, 우리 사회(한국 사회라고 쓰려고 했지만 미국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우리'로 통칭했다)의 역사 이해와 가치 수용의 양극화도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현대사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진영에 따라 평가가 달라 논란 속에 있게 되고, 논란 중인 인물에겐 어떤 긍정적인 교훈도 뽑아내서는 안된다는 태도가 형성된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전통시대, 전근대 시대의 인물들만을 기념하고 그들에게서만 역사적 가치를 찾게 된다.
예전 페이스북에 글쓰기 좋아하는 위대한 졶리 의사선생님께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신이 남들보다 나은 이유는 과거의 인물을 추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영 탐탁치 않았는데, 일단 서로 기질과 취향이 다를 뿐인 문제를 우열이 정해진 문제로 왜곡하여 남을 깔보는데 쓰는 거만함에 속이 뒤틀리는 것도 있었고 과거의 인물을 기념하고 교훈을 찾아보자고 주장해온 입장에서 어떤 모욕감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인물에서 역사적 가치를 찾고 현실 문제 해결에서 참고할 교훈과 역할 모델을 찾아보는 것이 그렇게 경멸받아 마땅한 미개한 모습일까? 그냥 과거의 인물에 대해선 무관심하거나 덮어 놓고 냉소하는 태도를 가지는 게 보다 지적인 태도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문명을 놓고 봤을 때, 인간이 지혜를 구하는 방법이 그렇게 되어 있지도 않고(물론 이것은 타파되어야 마땅한 과거의 방식일 뿐이라 할 수도 있겠다) 결국 앞선 세대의 시행착오와 선택을 분석하고 그의 주체가 된 에토스를 교육의 대상으로 하는 건 서양이든 동양이든, 전근대 한중일 중앙왕조이든 미국·영국과 같은 현대국가이든 어디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저 한국현대사 인물평 특유의 불필요한 갈등을 회피하고 있는 것일 뿐이면서 '내가 과거 인물을 추종하지 않기에 남들보다 낫다' 운운하는 건 어딘가 짜치는 데가 있다. 성가신 일에 얽히지 않았다는 수동적인 방어로서의 의미가 있을 뿐, 누군가는 그 문제에 뛰어 들어 의미 있는 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낯선 개념일 수도 있지만, 수동보다는 능동이, 잔뜩 겁 먹은 복지부동보다는 과감한 실천과 창의가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과거의 인물이든, 현재의 인물이든 다른 이로부터 배울 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미국에는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등 전직 대통령들의 기념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와 가까워질수록 해당 인물을 둘러싼 평가를 두고 논쟁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해당 인물들을 기념하는 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을 마치 미개한 사이비종교 신도라도 되는 양 몰아붙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이비종교 교주를 종교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섬기는 것과, 위인을 기념하고 그 행적과 업적을 정리하여 우리가 지금까지도 그 덕을 보고 있는 업적이라면 재조명도 해보고 현실의 과제와 한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영감을 얻는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인물을 기념한다는 것이 그저 미개한 현대의 토테미즘 숭배에 불과하다는 건, 홍위병들이 공자묘로 쳐들어가 공자상을 눕혀 매질하던 것이 봉건적 인습에서 벗어나는 해방적 행위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다. 미국에서 시련과 갈등을 겪을 때 본질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미 헌법과 건국의 아버지를 소환하는 것처럼, 근대 국가에서 근대적 체제를 갖추는데 기여한 인물들을 기념하고 소환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역사적 갈등이 심한 우리 나라의 풍토에서 아무리 뚜렷한 업적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인물을 둘러싼 평가 자체에 수반되는 갈등이 어마어마해 피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승만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을텐데,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업적과 위인으로서의 행적을 기록·기념하고 배울 것은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크고 도전적인 사업을 운영하고 신냉전의 시대 강대국 외교전략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의 필요성에 맞게 그들을 소환하는 것은 오히려 충분히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윌슨 센터를 만들고 케네디스쿨을 만드는게 다 어리석은 팬심의 발로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게 다 과거 인물을 숭배하는 것이니 미개하고 못 배운 것이라며 내려치는 것은 그냥 이 분야에 대한 견문이 부족해 나오는 섣부른 단정이 아닐까 한다.
본인의 독립적 정신을 위해 개인적으로 위인전이나 평전 같은 거 영원히 불매운동을 한다든가 하는 건 취향의 영역이니 간섭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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