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클럽과 그로스로그

   예전 그로스로그에 가입하게 된 이유를 말할 때, 방송대 편입 후 처음으로 방송대 컴퓨터과학과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로스로그 홍보 글을 읽게 되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방송대 사이트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그때 겨울방학이라 대명작 '파이트클럽'을 다시 보고 있었는데 파이트클럽을 보다가 '아무래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개발자 모임에 가입해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방송대 컴퓨터과학과 사이트라도 뒤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분은 '아니, 파이트클럽을 봤으면 격투기 동호회 같은 델 알아보는게 맞지. 왜 개발자 모임을 찾아요?'라고 영 알 수 없다는 표정(헛소리도 이런 헛소리는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 때 본 알 수 없다는 표정에 대한 일종의 답변으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렇다. 나는 학기가 끝나고 계절학기가 또 이어지는 지금의 현실이 믿겨지지 않아 쓸데없는 글을 하나 더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격투'와 '격투기'는 파이트클럽의 소재일 뿐이지, 주제가 아니다. 나는 작품을 가르칠 때 주제와 소재를 잘 구분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주제와 소재를 구분하지 못하면, 주제 의식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재 그 자체에 빠지게 되는 메타인지 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어린 학생을 다루는 교육자일수록 메타인지 이동이 이루어지지 않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것을 삼가라는 교수학적 지침이 떨어지기도 한다. 파이트클럽은 느닷없이 남자들이 모여 서로 치고 받는 '파이트클럽'을 만들어 결국 기성 사회와 문명을 상대로 테러를 일삼는 조직이 된다. 

  파이트클럽을 이끄는 리더의 이름은 타일러 더든. 파이트클럽의 메시지는 '싸움을 열심히 연마하여 맞짱을 잘 뜨자'가 아니다. 제도적 외피와 존재를 향한 타율적 규정을 넘어서서, 성경적으로 말해선 광야로 떠나, 스스로 한계적 조건에 처해 자신이 누구인지 주체적으로 규정하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르네상스 이후 합리적 자아를 규정했던 서구 철학을 한 번 뒤틀었던 지킬박사와 하이드 모티프를 한 번 더 뒤튼 것이다. 파이트클럽의 주제 의식은 반(反)문화의 문명 비판과 주체적 자기규정을 통해 자기해방을 이끌고자 했던 해커 문화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 어차피 겉멋에 개발자 되겠다고 컴퓨터과학과 편입한 것도 있는데, 학과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출석도 안 하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내게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내 문제와 직접 맞짱 뜨는 개발자가 되어야겠다'는 충동으로 이어지는 건 이 영화를 본 당연한 귀결이었다. 파이트클럽은 쓸데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존재를 규정하고 역할을 규정하는 타자들의 사회구성체인 기성 사회의 지시를 넘어, 자신의 문제와 맞장을 뜨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영화처럼 높은 곳, 비행기와 고층빌딩에서 만나 지하실로 가는 이야기. 그래서 저 밑바닥 존재의 기저로 내려가는 이야기다.

제1조: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You do not talk about the Fight Club.)

제2조: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You do not talk about the "Fight Club".)

제3조: 누군가 "그만" 이라고 외치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땅을 치면 그만둔다.

(If someone says "STOP" or Goes Limp, taps out the fight is over)

제4조: 싸움은 1대 1로만 한다.

(Only two guys to a fight.)

제5조: 한 번에 한 판만 벌인다.

(One fight at a time.)

제6조: 상의와 신발은 벗는다.

(No shirts, No shoes.)

제7조: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운다.

(Fight will go on as long as they have to.)

제8조: 여기 처음 온 사람은 반드시 싸운다.

(If this is your first night at a Fight Club, "You Have To Fight".)

"아니야. 싸워 본 적 없으면 너 자신을 얼마만큼 알겠어? 흉터 없이 죽고 싶지 않아!"

(No, it is not. How much can you know about yourself, you've never been in a fight? I don't wanna die without any scars.)


"모든 걸 잃은 다음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It's only after we've lost everything that we're free to do anything.)



  그래서 나는 미주알고주알 나에 대해 떠들고, 교사가 무얼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하고, 네가 얼마나 쓰레기이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이 시대에 가장 치열한 문제를 두고 싸우고 있는 자들이 디지털 정보들을 다루는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뭐 잘은 모르지만 개발을 잘 하면 수백억 부자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솔직히 내가 그렇게까지 잘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총알은 총구를 떠났고, 그 총알은 현재도 끊임없이 목표물을 명중시키고 있으며, 계속해서 날아가 어딘가로 꽂힐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2024년에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했고, 놀라울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달라지길 원해 했던 선택이면서, 기본적인 공부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내가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주먹을 쥐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맨주먹 복싱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모니터를 켜고 들어간 곳은 수상할 정도로 방송대에 안 맞게 '힙해 보이는' 개발자 모임이었다. 나는 거기서 무언갈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충동에 의한 것이었고, 내면의 깊은 데서 올라오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기도 했으며,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이 높은 나님(..)의 수준 높은 영화 감상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나의 새로운 미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최인훈이 소설 '광장'에서 운명을 만나는 곳을 광장이라고 하기로 했다고, 세상을 풍문 듣듯이 살아선 안 된다고 작중 주인공 이명준의 입을 빌려 말한 바 있다. 그것은 1960년 4·19의 시대에 나온 파이트클럽이었다. 그 파이트클럽은 대공황 속 세계대전이었고, 6·25였고 4·19였고 68혁명이기도 했으며, 몸부림치는 나의 방 안이기도 했고, 그로스로그이기도 했다. 
  여기서 내가 타자의 타율적 규정으로부터 견고하게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래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자기정체성을 구축해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무조건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거부하는 것민이 독립적 자아를 생성케 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객관과 주관의 일치를 탐구했던 서구 철학의 오랜 주제처럼, 보편적 인식과 자기 인식의 뒤엉킨 만남 위에서 거추장스러운 외피로 겹겹이 숨겨진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잡아내고자 하는 자기 탐구 그 자체다. 
  그것은 때로 자기에의 몰두 외에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때로 진정한 자기 자신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경험을 통해 만나게 되기도 한다. 나는 그래서 운명을 만나러 방문을 열고 광장으로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나선 파이트클럽은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때론 개발자 동아리의 모습으로, 때론 학구적인 스터디로, 때론 예기치 못했던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친목으로. 그렇게 예기치 못한 운명처럼 자기자신과 대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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