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초기 장교 교육과 개발자 교육에 대한 단상
왜 또 뜬금없이 개발자•IT 문제를 군대 얘기에 묶나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개발자는 그 양성 과정도 부트캠프(본래 신병을 교육하는 훈련소라는 뜻)라고 칭하는 등 실리콘밸리에서는 군사적 은유를 자주 활용한다. 아무래도 특유의 속도감이나 전투적 경쟁 탓에 군 관련 모티프가 쉽게 공감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일론 머스크만 해도 테슬라의 생산 위기(Production Hell) 시절에 해군의 전투 준비 명령에서 온 'All-hands on deck'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 트위터 인수 후엔 시스템 유지와 광고 안정화를 위해 'War room'을 구성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외신들이 머스크의 신속한 효율 경영을 '전격전(blitz, blitzkrieg)'이라는 용어를 써서 표현하기도 한다. 군 모티프와 개념에 대한 이해가 IT·개발 문화를 표현하는데 있어 영 엉뚱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 역시 ROTC 장교 출신에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장교 교육에 관심이 많다. 교육대학교에서 초등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 문제를 일생의 업과 연구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어떻게 청년들을 장교로 길러내는지를 다루는 '장교 양성 교육'은 흥미를 끄는 주제일 수밖에 없겠다. 내가 받은 장교 교육과 역사 속의 다양한 장교 교육을 상상하며 비교해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유독 드넓은 면적의 지역에서 각지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군벌이 출현했던 20세기 중국 근현대사는 이러한 상상 놀이의 좋은 무대가 된다. 황포군관학교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소련군 고문들이 최소 18개월은 교육해야 한다고 했지만, 당장 많은 장교가 필요했던 중국 국민당은 황포군관학교에 6개월 교육기간을 두었다. 황포군관학교는 6개월 동안 생도들을 바짝 교육하여 근대적 병학과 신해혁명 삼민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장교들을 배출해 군벌전쟁과 중일전쟁, 국공내전을 수행하게 했다.
황포군관학교는 당시 일제의 통치를 피해 중국 혁명에 투신했던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많이 교육받았던 곳인데, 쑨원의 삼민주의 이념으로 정신무장해 국민당의 북벌전쟁을 수행하던 황포군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오합지졸 군벌 군대를 파죽지세로 격파해나가며 미완의 혁명으로 그친 신해혁명을 북벌전쟁 국민혁명으로 완수했다. 장제스가 중국의 지도자로 떠올랐던 것은 그가 황포의 교장이었기 때문이었다. 20세기 중국의 역사가 혁명의 역사라면, 황포군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그 혁명의 역사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군사교육을 받은 일본군조차 중일전쟁 중 보잘것 없는 군벌부대와 달리 황포군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이끄는 중화민국 중앙군만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국공내전은 이른바 황포군관학교 동문들의 전쟁이었다. 고작 6개월의 교육으로 장교가 된 이들이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해냈다는 것이 놀랍다. 대학교 3·4학년의 사관후보생 과정과 4개월 병과학교 교육을 밟았을 뿐인 우리 ROTC 장교들도 이러한 역사의 격동기들을 만난다면 이와 같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독일과 소련의 장교 교육도 재밌는 부분이 많다. 나폴레옹에 패한 프로이센의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의 군사 개혁에서 출발한 프로이센 장교단은 독일을 최강의 육군국가로 탄생시켰다. 이때의 텍스트는 그 유명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다.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이라는 '군사적 천재'에 경악해 훌륭한 장교를 키우는 교육에 절치부심했다. 체계적인 장교 교육의 결과, 독일 장교들의 창의적인 '임무형 지휘'는 제한되고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독일군의 신속하고 유연한 전술적 기동을 가능하게 하여 전투에서 승리하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이겼을 때, 그들이 가장 경계한 독일의 무기는 탱크도, 전투기도, 잠수함도 아닌 독일의 참모집단 그 자체였다. 그러한 독일 참모집단은 베르사유 체제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채 한스 폰 젝트의 군사개혁으로 다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의 제3제국을 구현하는 핵심 인력이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전술적 운용, 전략의 구현에 있어 탁월함을 보여 신속한 기동으로 폴란드, 프랑스, 소련을 압도했다. 독일 장교단은 더 많은 병력과 더 좋은 장비를 갖춘 군대를 앞에 두고도 두려움이 없었다.
소련의 붉은 군대 장교들은 독일의 장교들과 대조적이지만 역시 재밌는 부분이 있다. 독일군 장교들은 대숙청으로 그나마 있던 제정 러시아의 유능한 장교들을 잃어버린 소련군을 크게 얕보았다. 실제로 소련군 장교들은 기초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보통교육만 받은 장교(책을 안 읽으려 하는 반지성주의 이런 것 문제인 수준이 아니라 아예 글을 잘 모르는 수준이었다고 한다)가 참모대학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이수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소련 공산당은 반동적인 귀족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말고 공산당이 신뢰할 수 있고 쉽게 통제할 수 있는 프로레타리아 출신으로 구성된 붉은 장교집단을 구축하고자 했다. 이러한 소련의 시도는 교육 수준이 낮은 장교단을 출현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는 후보생들의 낮은 문해력과 이해 능력으로 인해 원활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힘들게 했다. 질보다 양을 추구한 붉은 군대 지도부는 우선 장교 교육의 질보다는 장교를 배출하는 데 더 우선순위를 두었고, 이는 독소전쟁에서 수많은 소련군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남은 수많은 소련군 장교들은 피의 교훈으로 전장에서 전술과 전쟁을 배우며 능숙한 전술가로 성장해갔다.
독일군과 소련군의 장교 교육 시스템은 완전 정반대라 생각할 수 있겠다. 독일군은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여 이들이 높은 수준의 작전적, 전술적 이해능력으로 상급 지휘관의 의도를 이해하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면, 소련군은 장교라는 지위와 역할을 먼저 부여하고 현장에서의 시행착오로 배우고 성장하라는 방식이었다. 요약하자면, 교육이 먼저냐, 역할이 먼저냐. 지금까지는 훌륭한 요원을 만드는 교육이 먼저인 것이 정답이었다.
역사 속 장교 교육은 중요했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개항 후 근대화를 이루려던 말기 조선과 대한제국도 늘 장교를 배출하는 군사교육 기관 설치를 시도했다. 독립운동가들의 고민은 어떻게 독립전쟁을 수행할 장교들을 키워낼 장교교육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느냐였다. 그래서 한국사를 공부하는 수험생들은 일제시대 우후죽순 등장했던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들과 그 단체들이 각자 운영했던 장교교육기관의 이름을 외우느라 진땀을 빼기도 한다. 이는 독립국가로서의 신생국 대한민국의 군대를 건설하는 데서도 마찬가지였다.
초기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양성 교육은 우선 '장교부터 만들고 보자'라는 심정으로 소정의 자격을 갖춘 지원자들에게 한 두달의 기초 군사교육만 시켜 임관시키는 분위기였다. 신생국 대한민국은 대량의 장교가 필요했고, 이들을 차분히 교육시킬 자원은 부족했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군에는 나라 없던 시절을 다양한 군사 경력으로 채운 후보생들의 개성이 뒤섞이는 재밌는 장면들이 많았다. 고작 6개월의 교육과정만을 실시한 황포군관학교나 체계적이지 않은 중국의 군벌 교육기관보다 일본육사나 만주군관학교처럼 일본 제국의 체계적인 군사 교육을 받은 장교 자원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그래서였다. 이들은 오합지졸 군대가 될 뻔한 대한민국 군대의 중심을 잡아준 건군 근대화의 주역들이었다.
육사 8기와 육사 11기를 비교해보자. 육사 8기는 일제시대에 군사 교육을 받은 이전 선배 기수의 사관학교 장교들과 달리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나서 입교한 자원으로, 군 경력이 없는 순수 민간인 청년들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장교로 길러져 소대장으로 6·25 전쟁에 투입된 이들이다. 이들은 휴전협정이 맺어질 때쯤 일선 대대장을 맡아, 6·25 전쟁은 '8기생의 전쟁'이기도 했다. 이들의 교육 기간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라 길지 않았고, 이들은 현장에 투입되어 전투 속에서 교리와 전술을 학습한 이들이었다. 반면, 육사 11기는 최초의 4년제 육군사관학교 생도로 웨스트포인트를 본딴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받은 기수로 현장에서 소모되지 않고 후방에서 차분히 제대로 교육받은 최초의 기수였다. 이들의 개성은 크게 달랐고, 이는 5·16과 12·12라는 한국현대사의 대사건에서 부각되었다.
개발자가 되어 개발자 교육에도 관심이 생기다 보니 이러한 장교 교육과정의 개성과 비교가 개발자 교육과정의 개성과 비교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군사교육의 개성이 녹아들었던 대한민국 초기 장교 교육의 장면들과 4년제 대학교 컴퓨터과학과의 존재 가치가 문제시 되고 있는 현재 개발자 교육의 장면들은 어딘가 문제 의식과 교육에 대한 관점이 겹치는 부분이 크다. 요컨대 체계적인 교육이 먼저냐, 일단 현장에서 뛰어보는 것 먼저냐인 것이다.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가 되고 나서의 엘리트 의식이란 엄청난 것이었다. 이들은 군 개혁의 동량이자 주체로 여겨졌다. 몇 달 교육받고 임관된 선배들이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나 있겠냐는 것이다. 반면, 군사영어학교·조선경비사관학교·4년제 이전의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선배들은 6·25라는 거대 전장에서 전쟁을 배워갔다. 부트캠프에서 뭘 제대로 배우겠나. 컴퓨터과학과·컴퓨터공학과에서 4년 동안 배운 개발자들이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전공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프로젝트를 뛰어보고 서비스를 개발해 출시한 경험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등등의 의견이 나오는 개발 분야에서 이러한 교육 철학의 충돌은 겹쳐서 나타난다.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지금까지의 문명 발전에 대한 관점이나 교육 철학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전까지는 먼저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당연히 정답이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보조하는 부분에서, 특히 범용화된 지식 교육훈련에 있어서 시간을 지나치게 낭비하는 것보다 현장에서의 실감과 그를 통한 소프트 스킬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팔란티어 같은 곳에서는 대학교에서 큰 돈과 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기업에 와서 인턴이 되어 교육을 받으라고 하고 있다. 물론 군사교육기관은 직역에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매우 직접적으로 학습시키는 곳이니 일반 4년제 대학교와는 크게 다르겠지만, 컴퓨터과학과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실제 실무와 거리가 있고 그러한 부분들은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육사 11기보다는 육사 8기 이전, 독일군 방식보단 소련군 방식이 대두되고 있다고 할까.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하기보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빌려 필요한 것들 위주로 배우며 직접 서비스 개발을 해보는 경험을 빨리 쌓는 것이 낫겠다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려 하다보니 너무 막연했다. 물론, 이러저러한 것을 개발하고자 하니 도와달라고 하면 언어신경망 인공지능이 체계적으로 코드를 제공해 곧 출시할 수 있을 수준으로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내가 언어신경망 인공지능에 종속되는 거지, 내가 이 코드를 운용해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깊이 있게' 도움을 구하고 '체계적인' 지시라도 내릴 수 있도록 컴퓨터과학 지식의 전공 저변을 구축하는 길을 택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나는 최신 트렌드보다는 '옛날의 정답'에 가까운 선택을 한 셈이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는 모르겠다. 현장에 막상 부딪혔을 때 어떤 점에서 아쉬움이 느껴지고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움을 구하든, 지시를 내리든 일단 기본기는 있어야하겠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틀리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무작정 인공지능을 이용하든, 부트캠프에서 압축된 교육을 받고 뛰어들든, 1~2년의 컴퓨터과학 교육을 받고 뛰어들든, 꽉 찬 4년을 컴퓨터과학 교육에 들이붓든 현장에서 이 모든 것을 검증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만큼은 명확하다. 군인에게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전투를 치뤘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 전장에서 과연 내가 어떤 장교로 평가받을지, 그래서 지금의 나를 키운 교육의 방식이 어느 정도의 보편적 합리성을 인정받게 될 것인지는 내가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내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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