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와 인사이트
2017년 전역을 하고, 처음 초등학교에 부임했을 때 나는 특이하게도 한동안 군에 대한 향수(鄕愁)를 버리지 못했다. 당시 운전 면허도 없었던 터라, 가장 가까운 '매점'까지 1시간 반을 걸어야 하는 외진 시골 학교의 창고에서 숙식해야 하는 급격히 낮아진 생활 수준에서 비롯된 것도 있었지만(내가 소속됐던 포병부대는 덕소역 근처에 있어서 강남까지도 금방 갈 수 있었다) 첫 학교에서 만나게 된 리더십이 군에서 경험한 리더십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단지 권위적이다, 민주적이지 못하다의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 교장이 대대장보다 15살 정도 나이가 많았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답지도 못해 치졸하고 호탕하지도 책임감 있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의 현장 경력의 끝에 있는 사람이 이렇다고? '대대장만도 못하다.' 이것이 나의 첫 심경이었다.
사실 군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리라고 염려했던 후보생 시절의 기억도 잠시, 자대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군 표창만 해도 네 번을 받았고, 여러 통역 임무를 수행하며 부대 내에서 꽤 높은 인망을 누렸다. 대대장님은 방위산업전 포병여단 통역을 마치고 함께 돌아가는 레토나에서 내가 정말 자랑스럽다며 어떻게 영어공부를 했는지 여쭤보기도 하셨다. 군에서의 나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능력을 가지고 도전해 무엇이든 성공해 인정받았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해봤다.
군은 남자들만 모여있는 곳이고 일종의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가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다소 유치한 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좀 유치하더라도, 소극성과 수동성을 부끄러워하고 호방함과 능동성으로 부하들에게 모범을 보여 임무와 과업에 책임감을 가지는 모습은 훌륭한 리더십으로서의 보편타당성이 있었다. 수직적인 위계 질서와 권위주의 문화로 비판을 많이 받지만 수백, 수천의 부하들을 지휘하는 리더십은 사람을 격동케 하고 고양시키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이런 리더십을 보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던 내가 학교 현장의 치졸한 리더십을 접했을 때 느끼는 실망은 대단한 것이었다. 비록 군이 예전 같지 않고 유치하고 보잘 것 없이 된 세상이지만 말이다.
전역을 하고 나서도 군에서의 기억을 완전히 잊지 않았던 나는, 마치 근대화된 기관을 경험한 이가 뒤늦게 투입된 전근대 사회의 인습에 잘 종속되지 않듯이 학교 업무에 투입되고 나서도 참모 장교로서 부대 과업에 참여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관점과 태도를 유지했다.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는 장교가 으레 부임지와 임무를 폭넓게 경험해야 하는 점을 상기했다. 되지도 않는 문제들을 유치하게 다투고 있는 교장, 교감, 부장교사들보다 국방부, 육군본부, 사·여단, 대대로 이어지는 군 조직의 기능 운영과 지휘관•참모들의 전문성이 더 그럴듯해 보였다. 같이 전역한 동기에게 '인사과장 출신으로서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하냐, 이렇게 돌아가는 게 맞냐' 퇴근길에 운전하며 떠들던 추억이 있다.
육군 장교의 핵심은 주로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이룬다. 학군 장교로서의 나는 비록 군을 금방 떠날 단기 장교였지만, 육사 장교들을 우러러보는 입장에 서 있었다. 육사 출신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놈들은 몸도 틀이 잡혀 있고, 학생장교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병과학교에서도 자기들만 있을 땐 점호를 알아서 하는 대단한 놈들이다. 나는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다 교관님께 한 소리 듣기도 했다.
나는 원래부터 전쟁사와 전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육사 출신들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전역 후에도 남아 있어서 교사들이 쓴 책보다는 안보총서 도서 시리즈나 전쟁사,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미군 지휘참모대학, 일본 방위대학, 러시아 합동군사참모대학교 같은 해외 군사교육 기관에서 공부한 장교들의 책을 더 열심히 읽었다.
대충 김태형, 하성우, 주은식 같은 분들이었는데, 역시 뜬구름 잡듯이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 구호 비슷한 말들이나 반복하고 잘 와닿지 않는 이상론을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교사들보다 스마트한 장교들이 현실의 입체성과 복잡성을 관통하는 깊은 지식과 통찰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교사가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육사를 나와 해외 군사교육 기관에서 큰 전쟁의 교훈을 공부하고 선진 교리를 익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전략•작전•전술을 바라보는 장교들이 교육청에서 무슨 연수를 하고 무슨 사업을 한다는 교사들보다 더 똑똑해보였다.
군은 제한된 환경에서 임무의 성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 나름의 합리성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비록, 군 생활관에서 지내는 스스로가 어떤 부조리함과 답답함을 느꼈는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특히 미군이나 이스라엘군의 이야기는 이들이 어떻게 적으로부터도 배울 정도의 학습 능력을 갖추게 됐고, 인습적·관습적 구태로부터 벗어나 혁신을 이루고, 피아 모두 상상치 못했던 새로운 발상의 조합으로 혁신을 이루고, 이것이 민간 사회의 기업 운영과 기술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많은 교훈을 제공한다. 내 지식과 능력의 상당 부분은 이런 교훈의 산물이었다. 비록 이렇게 말하면 내가 대단한 지식과 능력의 소유자인 것처럼 들리지만 절대로 그렇진 않고, 내게도 이렇게 작용할 수 있었다면 많은 이들에게도 생산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
나를 한국경제신문으로 불러 준 귀인(貴人)은 이제 내가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하는 것을 원하신다. 전쟁과 군은 더 이상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전쟁에서의 교훈과 군의 운영이 기업을 운영해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공통점도 있고 나름의 통찰을 제공할 수 있지 않냐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빈축이나 샀다. 생각해보면 군은 상대방의 절멸을 추구하지만, 기업은 거래를 통한 상호호혜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해 방향성이 명확히 다르긴 하다.
그 분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이야기하며 전쟁과 군대 이야기보단 자유로운 거래와 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자유무역의 퇴조와 트럼프의 시대에 패권과 군사의 '현실주의' 국제정치가 아니라 칸트의 영구평화론 얘기가 나오니 오히려 현실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의 군사벽(癖)이 괴짜스러움을 넘어 세상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킨다고 생각해 안타까운 마음에도 나온 충고라고 생각해 내용을 두고 다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우리 사회가 징병제의 부정적 유산으로 군에 관련한 모든 것을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무시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잘못된 습속에 굴복하는 것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속으로 '지나치게 단정짓는 거 아니냐', '미군과 이스라엘군 정도면 그래도 배울 교훈이 크지 않냐', '그들은 혁신의 주체였고 시민들이 그들로부터 배우지 않느냐', '전 세계를 쥐고 흔드는 팔란티어도, 팔머 럭키의 안두릴도 정보과학으로 고전적인 군사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선 게 아닌가'는 반감이 고개를 들면서.
모종의 사건으로 군에서 롤 모델과 첨단을 찾던 내가 IT로 관심을 옮기고 실리콘밸리와 개발자•기업가에 열광하게 되었지만, 군이 나의 교육기관이자 스승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차원에서 기록을 남긴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