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누구도 심판하지 않는다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표현이 있다. 나는 이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역사의 심판을 운운하는 세력 특유의 자신만이 정의이고 자신과 대립되는 쪽은 심판받아 마땅할 악의 세력이라는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독선적이고 교조적인 태도 때문이며, 나머지 하나는 역사를 자기 편한대로 의인화하여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해 고용된 판사라도 되는 양 구는 자기중심적인 유치함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역사란 자기 좋을대로 내 편 들어주는 편파적 심판도 아니고, 고대인들의 신앙에 동서양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사후세계 관리자처럼 일생 동안의 선악의 축적으로 누군가를 심판하는 존재도 아니다.
역사란 결국 사람이 살아온 기록의 축적이며, 다른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똑같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지닌 현실 세계에서의 인간일 뿐이다. 역사는 누구도 심판하지 않는다.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또 다른 인간일 뿐이다. 역사의 심판을 운운하는 이들도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다른 인간을 심판할 권능을 얻기 위해 정치에 몰두하고 정치 권력의 쟁취를 위해 분투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다'는 표현이 있다. 친한 지인에게 '트럼프는 역사의 진보에 기여할 사람이 아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트럼프에 대한 호오의 감정을 떠나 나는 이 표현에 대해 큰 의아함을 느꼈다. '과학의 진보에 기여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실험과 연구 업적을 통해 잘 정립된 절차 검증을 거쳐 한층한층 인간의 지적 지평을 넓히고 인간 지식 이해의 레벨을 높여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현장에서 분투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간 내용의 축적인 역사에서 진보에 기여하고 말고는 무슨 의미란 말인가? 누구의 행적은 역사이며 누구의 행적은 비역사란 말인가? 도덕적으로 옳으면 역사이고, 비도덕적이면 비역사인가? 그걸 누가 결정하는가? 사학 전공자가 결정하는가, 철학 전공자가 결정하는가, 아니면 어떤 절대적 권위를 부여받은 종교 세력이 결정하는가?
나는 역사 중에서도 전쟁사를 좋아한다. 인공지능이나 미래 사회 관련한 세션이 열리면 중세 전쟁사 전공인 유발 하라리가 불려오는 것은 어딘가 미묘한 감정이 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밀덕들이나 들을 쓸데 없는 말이나 한다는 소리를 들을텐데, 이 대머리 유태인은 미래 사회의 성격과 앞으로의 문제들을 진단하는 권위를 중세와 르네상스의 전환시대에 전쟁에 어떤 진보가 있었는가를 연구한 데서 비롯된 통찰로 '쟁취해냈다(earned)'는 것이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그는 문과지만 미래 사회, AI 사회에 대한 해설가의 지위를 '쟁취해냈다'.
전쟁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꼬마였던 때부터 군사적 소재를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딱히 그 때문만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서로 대립하는 집단적 인간의 의지와 의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부딪히며 인간사의 거의 모든 내용들을 '폭력적'이고 '중립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 편견과 각종 이유로 형성된 선입견을 넘어선 인간으로서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며, 온갖 문명적 수단과 제도들을 동원한다는 점에서는 동물성을 아득히 초월하기도 한다.
전쟁은 비인간성과 합리성을 뒤섞어 각종 학살과 모략을 동반한다. 때로는 더 많은 이들을 죽이기 위한 기술의 고도화를 추구하다 인간의 편리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의 진보를 이루기도 하고, 적은 희생으로 큰 정치적 이득을 올리기 위한 특수작전과 교묘한 책략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기 전인 '도덕의 중립지대'에서 오로지 승리만을 추구하는 '군사적 합리성'을 두고서만 다투는 싸움은 그 자체로 문명의 경쟁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그것엔 선악이 없고 미추가 없으며 역사와 비역사가 없다. 오로지 승리와 패배만이 있을 뿐이며 그에 따라 달라붙는 결과들에 우리들이 덧붙이는 수많은 의미 덩어리들만이 있을 뿐이다.
역사의 발전이라는 말은 너무 다면적이고 모호하고 추상적이라 명확하게 정의내리기 쉽지 않다. 그러나 전투의 발전, 전투력의 발전, 전쟁의 발전, 국가의 발전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국가는 궁극적으로 전쟁 기구이기에, 결국 어떤 형태로든 이기는 것에, 힘에 기여한 사람은 국가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다는 말은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나 군사공동체가 부딪히는 문제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트럼프가 역사의 진보에 기여하지 못할 이유가 딱히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역사가 무엇이고 역사의 진보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사학 전공자, 윤리 전공자, 교육 전공자들의 현학적인 도덕·역사 수업이 아니라 피 튀기는 삶의 전장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결국 같은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의 질서와 최소한의 도덕으로서의 강제적 규범을 집행하기 위해 법을 적용하여 판단하는 사법부를 제도화했다. 역사가 알아서 누군가를 심판한다면 이런 인위적인 제도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소박한 삶 속에서 신앙을 구성해 사후세계의 심판자를 상상했던 고대인, 중세인처럼 어떤 인간 위의 추상적인 심판자를 상상하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역사가 무언가를 심판한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만, 역사는 그저 삶의 기록의 축적일 뿐이다. 모든 것은 인간의 능동적 작위에 이루어지며, 거기엔 어떤 섭리나 역사의 법칙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그 승리와 번영을 다투는 싸움을 둘러싼 인간사가 바로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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