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체험을 통해 자유주의를 배우다
아무래도 본업이 국가공무원인 초등교사이다 보니 개발자들의 삶은 확실히 문화와 태도 면에서 나에게 낯선 부분이 많았다. 개발자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우고 업에 대한 성실함을 배울 수 있었달까. 아무래도 공직에 있다보니 공직 중 제일 자유로운 축에 끼는 초등교사더라도 틀에 박힐 수밖에 없는 면이 있는데 개발자들을 만나며 그 틀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 기분이 든다. 조금 진보적이다 싶은 전통 문화 행위자가 외국의 문명을 맞닥뜨렸을 때의 기분이랄까.
어딘가 실리콘밸리를 모방해서 그런지 미국 느낌(?)이 물씬 나는 개발자들의 업태나 표현 방식들, 평소엔 무척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프로젝트와 성과물에 대해 가지는 진지한 책임 의식이 멋있어 보였다.
자유주의를 배웠다고 하지만 자유주의란 말 자체가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라 간단하게나마 정리를 해야할 것 같다. 내가 말하는 자유주의란, 경제적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사유재산과 자유의 근본적인 성격, 기업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경제의 중요한 문제들을 정부보다는 시장 질서에 의한 자유로운 경쟁과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때론 잘 모르는 이들에게 신자유주의라 일축되기도 하고 지나치게 시장 중심, 기업 중심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우리 경제가 시장 자본주의 체제로 운영되는 만큼 가볍게 볼 수 없는 경제 철학이다. 국립 교육대학교에서 국가가 정해준 양성 과정을 거쳐 국가가 관리•감독하는 임용시험을 통해 국가 공무원이 된 나로서는 시장이 모든 행위와 작용의 중심이 되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텍스트를 통해 관념적으로만 그 가치를 알 수밖에 없는 사조이기도 했다.
개발자의 교육·양성 방식이나 채용·해고 방식, 노동 방식은 여러 가지로 경제적 자유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며 어떤 방식의 사회를 지향하는 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내가 '개발자들의 일하는 방식을 보니 자유주의가 어떤 건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고 하자 '혼자서 일한다고 그러는 거냐', ' 남이랑 일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같은 빈축이나 샀지만, 당연히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개발자가 충분한 기술만 있다면 1인 개발자로서 원격근무로 비접촉의 삶을 살 수도 있겠지만, 개발자라고 협업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개발자의 가장 큰 특징이 혼자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데 있다고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개발자는 무엇보다 국가가 법으로 강제하는 양성 과정을 요구받지 않는다. 개발자는 꼭 컴퓨터과학 전공을 거치지 않아도 좋으며 국비는 물론, 다양한 교육 기관과 기업이 운영하는 부트캠프, 온라인 강좌, 독학, 오픈소스 기여 등 자유로운 경로가 존재한다. 이는 자유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국가가 면허제도를 통해 인위적인 진입 장벽을 세우지 않고 자유롭게 경쟁하여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게 하는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개발자는 '얼마나 오래 공부했는가'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어떤 기술을 습득했는가'가 중요한 직역이기도 하다. 이는 시장에서 신분이나 타이틀이 아니라 성과와 시장 가치로 평가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채용과 해고의 방식에서도 개발자는 자유주의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개발자 채용에서는 학벌이나 연공 서열보다 코딩 테스트, 포트폴리오, 프로젝트 경험과 같은 실력 평가가 우선된다. 이는 '줄세우기식 경쟁'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좌파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히려 '충분히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줄을 세우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 자유주의 시장은 능력과 성과에 따라 각 경쟁자들이 평가되는데, 개발자 채용 시장은 이러한 모델이 현실 속에서 충분히 잘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생각된다.
기업은 프로젝트 단위 계약, 프리랜서 계약, 단기 계약직 등 수요 변화에 따라 인력 활용을 조정한다. 해고 역시 다른 산업보다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이는 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자유로운 고용 계약의 원칙 거의 그대로이다. 자유주의적인 채용·해고 방식이 지나치게 비인간적이고 냉혹하며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기만 하다고 막연히 떠올리기 쉬운데 이것이 왜 오류이며, 실제 현실에서 자유로운 고용 계약이 어떻게 잘 기능할 수 있는지 우리는 개발자 시장을 통해 볼 수 있다.
개발자의 노동 방식은 자율성이 강조된다. 개발자는 정해진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도구 선택, 근무 방식(재택, 원격, 유연 근무 등)에서 큰 자유를 누린다. 자유주의 경제에서 개인의 선택권과 창의적 경쟁이 중시하는 점과 통하는데, 이것이 단순히 교과서에 쓰인 막연한 이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것이 현실적인 경쟁력과 직결되며 첨단 자본주의의 현실과 어떻게 긴밀히 연결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개발자는 성과 기반의 보상을 받는데 근속연수보다는 결과물, 코드 품질, 서비스 기여도로 평가받아 보상과 승진이 결정된다. 시장에서의 가치 창출로 보상을 받는 것이다. 물론 시장 경쟁의 압력이 존재하여 특정 기술에 뒤처지면 곧장 경쟁력이 떨어져 생존이 어려운데 이는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경쟁을 통한 혁신·도태 메커니즘 그대로에 가깝다.
코로나 디지털 대전환 때 빅테크는 많은 수의 개발자를 채용해 고임금으로 활용했으나, 인공지능 전환으로 이들이 채용했던 규모만큼 필요하진 않게 되자 이들을 레이오프했다. 빅테크 출신 개발자들은 다시 고용 시장으로 돌아와 다른 일자리를 찾게 되거나 창업에 도전했는데, 이전 직장 못지 않게 고소득을 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유로운 고용 계약이 어떻게 유연한 고용 시장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어떻게 사회 전체적인 기회와 부를 더 크게 창출하는 지를 책으로만 접할 때는 막연하고 이해하기가 힘들었는데 디지털 혁신과 개발자 시장을 생각해보면 크게 이해하기 어렵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학급에서 국가 운영과 경제 운영 교실을 열면서 시장 경제의 원칙과 자유주의 철학에 대해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 그것이 힘들었는데, 막상 디지털·인공지능 경제의 핵심적 인력을 이루는 개발자들과 어울리다 보니 인문학 텍스트,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인 교사 네트워크에만 갇혀 막상 실제 현실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를 놓치고 살았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자기 연찬의 시간들이 교육자로서의 나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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