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북스 외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래 독서회 회장이었던 탓에 몇 안 되는 특기 중 하나가 읽기 힘든 두꺼운 고전을 완독해서 회원들에게 해설해주는 것이었다. 이 능력은 학생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는 것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학교급이 초등이므로 때론 발달 단계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깊이 들어가는 부작용이 생기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깊은 데까지 설명을 끌어가고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는 건, 우연히 만난 지식과 개념이 전체적인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순간들을 직접 체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관중을 '동아시아의 셰익스피어'라고 부르곤 한다. 삼국연의의 비교대상은 역사책인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극문학이어야 옳건만(실제로 삼국연의도 극문학이다), 사람들은 문학이 결국 허구라는 것을 이유로 삼국연의의 가치를 정사와 비교해 부당하게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삼국연의는 동양인인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영웅이란 무엇인가, 활동 공간으로서 대륙의 스케일(뭐만 하면 천 리, 뭐만 하면 백만대군) 등에 대해 영감을 제공하는 고전이다. 그래서 우리는 즐겨 삼국연의의 고사와 내용을 인용하며 처세의 교훈으로 삼고는 한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서양 역사의 고전이다. 물론 투키디데스는 '역사란 신화도 서사시도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는, 인간의 갈등과 투쟁을 중심으로 신화적인 역사가 아닌 현실적인 역사를 기록하고자 노력했던 고대의 역사가다. 원말명초 연의문학인 '삼국연의'와는 그 비교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생소한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이야기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해양력과 제해권을 통한 제국 네트워크의 성립, 자유, 패권의 이전에서 오는 도시국가들의 쟁투, 현실주의 국제정치 등 근대화된 서구 정치에서도 흔히 인용되고 영감을 주는 일화와 개념들의 고전적 원천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코린토스와 케르퀴라의 분쟁에서 시작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텍스트를 즐기기 위해선 일단 삼국연의와는 다른 공간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삼국연의는 해안선이 단순한 드넓은 면(面)의 중국의 평원(물론 산지나 늪지일 수도 있다)을 공간으로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해안선이 복잡하고 해안선을 중심으로 바다를 통해 선형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이것은 외교의 방식과 사건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동양과 다르게 하는 요소이다.
예컨대 삼국연의의 큰 사건인 '적벽대전'은 조조의 대병력이 양자강을 넘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면, 코린토스와 케르퀴라의 분쟁은 해양 네트워크를 누가 통제하느냐를 둘러싼, 즉 제해권을 다룬다. 삼국연의만 줄창 읽은 동아시아의 독자에겐 굉장히 낯선 방식이다. 왜냐면 우리에게 제해권이란, 오나라와 위나라 중 누가 수군을 잘 운용하느냐(물론 이건 바다 얘기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함선들을 공략해 육군의 보급로를 끊었다 정도인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첫장을 장식하는 제해권 문제는 이를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고 재편하느냐 차원의 문제였다. 코린토스와 케르퀴라의 분쟁이 이와 같은 것이었다.
케르퀴라는 본래 코린토스의 식민도시이다. 우리는 식민지라고 하면 한국을 대상으로 한 일본의 식민지 수탈을 떠올리고 어떤 도덕적인 불의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우리에겐 그런 전통이 없기 때문이고 19세기 제국주의 정세에 준비되지 못해 불의의 피해자로 전락한 안 좋은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식민지란, 해양 질서에서 항로의 선을 따라 출발지의 시민들이 거점에서 새로운 도시를 개척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공간이었다. 삶의 터전이 달라지면 이해관계도 달라지는 법이다. 당연히 식민도시와 그들의 출발지였던 식민모국 도시국가는 마치 미국과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해관계가 달라져 갈등하게 된다.
코린토스의 식민도시 케르퀴라는 해안선을 바탕으로 한 팽창 과정에서 에피담노스라는 식민도시를 건설하게 되고, 에피담노스를 둘러싸고 식민모국 코린토스와 경쟁하게 되는 처지가 된다. 코린토스는 케르퀴라가 그들로부터 비롯되었으면서 자신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고 경의를 표하지 않으려 한다며 응징하려 했고, 강력한 해군력을 가진 케르퀴라는 마찬가지로 강력한 해군을 가진 아테나이에게 도움을 요청해 코린토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한다. 이것은 코린토스의 뒤를 봐주던 스파르테와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테세우스의 도시 아테네와 헤라클레스의 도시 스파르타의 헬라스 세계를 둘러싼 대전쟁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헬라스 세계에서 벌어진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은 아테나이가 불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불의해서 일어나는 전쟁이란 없다. 전쟁은 인간의 폭력성이 극대화된 행위일 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된 것은 해양에서 세력을 팽창해가던 아테나이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의 패권을 유지하려던 스파르테 사이의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화-오랑캐의 올바른 명분질서가 무너지면 난세가 온다 생각했던 동아시아 유학자들이나 자유통상과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 영구평화가 온다고 생각했던 자유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고전적인 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 힘의 균형이 지켜져야 평화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고전적 현실주의자의 영원한 교과서인 것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재이기 때문이다.
다음 인용된 글들은 케르퀴라와 코린토스의 분쟁이 포테이다이아, 코린토스, 테바이, 아테나이와의 분쟁으로 이어지면서 이 분쟁에 스파르테가 개입하길 원하는 코린토스인들과 이에 반박하는 아테나이인의 연설 내용이다. 이들이 논리를 만드는 방식이 동아시아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 밖에 누가 이웃을 비난할 자격이 있다면 우리야말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아테나이인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도 여러분은 그 점을 모르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또 여러분이 맞서 싸우게 될 아테나이인들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이 모든 점에서 여러분과 얼마나 다른지 따져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테나이인들은 진취적이며,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것을 실행하는데 민첩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보수적이고 창의력이 부족하며 행동함에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곤 합니다. 또 아테나이인들은 능력 이상으로 저돌적이고, 상식 밖의 모험을 하며, 역경에 맞닥뜨려도 낙천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능력 이하로 행동하고, 건전한 상식도 불신하며, 역경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고 비관합니다.
여러분이 주춤거리는 반면 그들은 주저하지 않으며, 여러분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반면 그들은 바깥세상을 떠돌아다닙니다. 그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면 무언가 얻을 것이 있다고 믿지만, 여러분은 집을 비우면 가진 것조차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들은 이기면 적을 되도록 멀리 추격하지만, 지면 되도록 조금 물러납니다. 아테나이인들은 또 자신의 몸을 자기 것이 아닌 양 나라를 위해 초개같이 버리지만, 자신의 지성은 나라에 유익한 일을 하기 위해 자기 것으로 가꿉니다.
그들은 계획한 것을 실행하지 못하면 갖고 있던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여기고, 성공하여 이익이 나면 그것을 앞으로 얻게 될 것에 견주어 미미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무엇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새로운 희망으로 금세 그 틈을 메웁니다. 오직 그들만이 무엇을 원하자마자 곧바로 가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결정하면 그 즉시 실행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평생 동안 애쓰고 노력합니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얻느라 가진 것을 즐길 여가도 없고, 필요한 일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축제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일하지 않고 편안히 지내는 것이 힘겨운 노고보다 더 큰 고통입니다. 따라서 누가 한마디로 그들은 날 때부터 자신도 가만있지 못하고 남들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옳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라케다이몬인이여, 이런 나라가 여러분과 맞서고 있건만, 여러분은 지속적인 평화란 옳은 일을 위해 힘을 사용하되 불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보이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방어를 위해서도 여러분 자신이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을 공정한 태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은 여러분과 같은 원칙을 지키는 이웃나라에 대해서도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데, 지금 여러분은, 우리가 방금 지적했듯, 여러분의 생활 방식은 아테나이인들에게 견주면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기술이나 정치나 새로운 것이 낡은 것보다 항상 우세하기 마련입니다. 평화스러운 도시에는 전통적인 관습이 최선이겠지만, 수많은 문제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곳에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테나이인들은 이 방면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체를 개혁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제 그만 늑장 부리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약속한 대로, 여러분의 동맹국, 특히 포테이다이아에 도움을 주고, 당장 앗티케로 쳐들어가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은 친구와 친족을 가장 고약한 적의 손에 넘기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절망한 나머지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그 이름으로 맹세한 신들과 우리 처지를 알만한 사람들 눈에 우리가 부당 행위를 하는 것으로 비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동맹을 깬 책임은 고립무원의 궁지에 빠져 다른 자들과 손잡는 쪽이 아니라 도와주겠다고 맹세해놓고 도와주지 않는 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개입하기로 결단을 내리면 우리는 여러분 곁에 머무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가 친구를 바꾸는 것은 불경한 것이 될 것이며, 또 여러분보다 더 친근한 친구를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여러분은 올바른 결단을 내려 여러분의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그대로 펠로폰네소스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주십시오.'
'단언하건대, 우리는 마라톤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서 페르시아인들과 맞섰습니다. 또한 페르시아인들이 재차 침공해왔을 때, 우리는 육지에서 그들을 막을 충분한 병력이 없어 모든 시민이 함선에 올랐다가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전은 페르시아인들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항해해가서 도시를 하나씩 파괴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여러분은 페르시아인들의 수많은 함선에 맞서 서로 지켜줄 능력이 없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 가장 명확한 증거는 크세르크세스의 태도입니다. 해전에서 패하자 그는 자신의 군대가 더는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대부분의 육군을 이끌고 서둘러 철수했으니 말입니다.
전투는 그렇게 끝났고, 그것은 곧 헬라스인들의 운명이 해군에 달려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투가 그렇게 끝나도록 세 가지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니, 가장 많은 함선과 가장 능력 있는 장군과 불굴의 용기가 그것입니다. 4백 척의 함선 가운데 거의 3분의 2가 우리 아테나이의 함선이었습니다. 장군은 테미스토클레스였습니다. 그는 해협에서 싸우자고 가장 강력히 주창했고, 그것이 분명 우리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방문한 이방인 중에 그를 가장 존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여준 불굴의 용기는 유례없는 것이었습니다. 육로로 아무도 우리를 도우러 오지 않고 우리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들이 이미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과감히 도시를 버리고 재산을 포기했습니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도 남은 동맹국의 공동의 이익을 외면하거나 사방으로 흩어져 동맹국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대신 위험에 맞서기 위해 함선에 올랐으며, 여러분이 우리를 도우러 미리 오지 않은 것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여러분에게 주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떠나온 도시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고, 여러분은 그 도시를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에게 원군을 보내준 것은 우리가 염려되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염려되어서였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우리 도시가 아직 온전할 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망해버린 도시를 뒤로하고는 살아남을 가망이 거의 없는 도시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면서 우리 자신을 구했으며, 여러분을 구하는 데도 한몫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영토를 염려하여 다른 나라처럼 미리 페르시아인들 편에 가담했다면, 또는 나중에 우리가 완전히 결딴났다고 보고 함선에 오를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함선이 부족한 여러분이 적과 해전을 벌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며, 크세르크세스는 편안히 목적을 달성했을 것입니다.
라케다이몬인들이여, 우리는 그때 용기와 결단과 지혜를 보여주었거늘 그런 우리가 지금과 같은 제국을 통치하기로 그 때문에 헬라스인들에게 이처럼 심하게 미움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우리가 그와 같은 제국을 획득한 것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페르시아군의 잔존 부대에 맞서 끝까지 싸우려 하지 않자 동맹국들이 자진하여 찾아와 우리더러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단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보니 우리는 제국을 현재 상태로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선 첫째로 두려움이, 다음에는 체면이, 끝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맹국이 우리를 미워하게 되고, 몇몇 동맹국은 반기를 들다가 도로 제압되고, 여러분은 우리에게 이전처럼 우호적이지 않고 우리를 의심하고 우리와 다투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특히 우리 곁을 떠난 동맹국이 여러분 편이 된 마당에, 우리가 제국을 내놓는 것은 모험이며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든 큰 위기에 처하면 제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며, 그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라케다이몬인이여, 여러분도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여러 도시를 여러분에게 유리하도록 조직하고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때 여러분이 페르시아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며 통수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못지않게 미움을 샀더라면, 여러분도 틀림없이 우리만큼 동맹국에 엄격했을 것이며, 그래서 동맹국을 가혹하게 다스리거나 아니면 위험을 자초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제국을 받아들인 뒤 체면, 두려움, 이익이라는 세 가지 강력한 힘에 제압되어 제국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도 아니고,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짓도 아닙니다. 그런 짓은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니며 약자가 강자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는 우리가 그런 지위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여러분이 이제 여러분 이익을 염두에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는군요. 하지만 힘으로 재산을 늘릴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정의의 논리 때문에 이익을 포기한 사람은 일찍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바다를 매개로 선(線)의 관계로 연결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명분 질서에 바탕을 두고 토지 지배의 농경 문명이 연속적으로 펼쳐진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가 구성된다. 똑같이 관념상의 질서를 추구하더라도 우리가 토지에 종속된 사농공상 명분 질서와 예법의 상징체들로 이루어진 것들을 받든다면 이들은 상업상의 이익과 이를 규정하는 계약에 의거한 질서를 받들었다.
이들의 질서는 연속된 토지가 아니라 멀리 떨어진 거점들이 바다에서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선(線)으로 연결되었고 도시는 운명으로서의 토지와 그에 부속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임금가 왕조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토지를 경작해 먹고 사는 백성들)가 아니라 언제든지 해체되고 다시 재구축될 수 있는 계약법으로 매개된 무장된 상인들의 공간이었다. 이들의 전통에서 사회계약론과 자연법 체계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바다를 매개로 아테나이와 스파르테 어느 도시 네트워크와 연결되는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민중 중심의 민주정인지 참주정인지 정체(政體)마저 달라지게 된다. 바다를 사이에 끼고 멀리 떨어진 이오니아, 시칠리아, 트라케에서 스파르테와 동맹인 참주정 도시 국가들과 아테나이와 동맹인 민주정 도시 국가들은 각자 자신의 안보적 이유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된다. 민주정을 지지하는 시민 집단이 참주제를 지지하는 이들이 다스리던 폴리스를 전복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내전을 다른 폴리스로 피신한 망명자들이 각자의 동맹 네트워크를 활용해 주도하기도 한다. 이미 기원전 고대국가들끼리의 경쟁에서 헤게모니를 둘러싼 체제의 수출과 전복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 질서가 하늘로부터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운명을 걸고 사회구성원들이 선택하여 계약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이 당연시 여기던 모든 사회적 문화적 관념작용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전혀 당연하지 않은, 역사적인 구성물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서양적 관념의 해양 네트워크 공동체 질서는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로 이어져 우리 동아시아의 중앙 왕조들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들인지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헬라스 국제정치에 나오는 용어와 논리들이 삼국연의에 나오는 용어와 논리들과 크게 다르다. 누가 적통의 중화제국 황제인지 누가 역적이고 오랑캐인지 가르는 삼국연의의 용어 표현과 논리들을 생각해보자. 물론 우리 사극에서는 이런 삼국연의 스타일의 언어들이 익숙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차이를 비교하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어보면 서양과 동양의 문명, 근대화 이후와 이전의 문명,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에 대해서 더 깊이 있는 통찰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타율적 근대화로 빠르게 내달렸지만 아직 정신의 근대화는 완전히 이루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비교 통찰은 더욱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아테나이와 스파르테의 전쟁은 이오니아인과 도리아인의 대충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금 터키의 지중해쪽 해안선을 보면 알겠지만 이곳의 해안선은 참으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오니아인은 이들 해안선에 바탕을 두고 해양 도시문명을 구축한 이들이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의하면 아테나이를 건립한 것은 테세우스인데, 아테나이의 정신은 모든 이방인을 받아들이고 보호하는 도시였다고 한다. 신에게조차 버림받은 테베의 망명자 오이디푸스를 품은 것도 결국엔 이방인들을 보호하고 돕는 도시 아테나이였다. 어딘가 이민자들이 나라를 만든 전통을 강조하는 미국을 연상케 한다. 도리아인은 북쪽에서 내려와 발달된 철제 무기로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정착한 전사 종족이었다. 이들을 대표하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도시 스파르테였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아테네의 개혁가 솔론과 스파르타의 개혁가 뤼쿠르고스를 비교하는데, 뤼쿠르고스의 개혁은 군사 문명에 적합하게 도시 국가의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고게'로 대표되는 스파르타식 교육을 포함하는 것이다. 강력한 전사 기질의 군사귀족들로 이루어진 도시국가 스파르타는 어딘가 프로이센 군사전통의 독일을 연상케 한다. 민주정과 병영국가, 이것은 어느 쪽이 더 옳고 우월한지의 논쟁을 떠나 서구식 도시국가 거버넌스의 두 모델이었다.
다음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개전을 앞두고 스파르테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이다.
"아테나이인 여러분, 펠로폰네소스인들에게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의견은 늘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전쟁을 하기로 결심할 때 마음 다르고 실제로 전쟁할 때 마음 다르며, 상황에 따라 마음이 바뀐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럼에도 나는 종전과 다름없는 조언을 여러분에게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나는 여러분 가운데 내 말에 찬성하는 이들은 우리의 공동 결의가 실패해도 당연히 이를 지지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때는 우리 계획이 성공해도 자신이 이에 기여했다고 자부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결과는 사람의 마음 못지않게 변덕스러우며, 그래서 우리는 예상이 빗나가면 운명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우리에게 분명 전에도 음모를 꾸몄지만 지금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우리 사이의 분쟁은 중재로 해결하고 중재 기간에는 각자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그대로 가진다고 조약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그들은 중재를 신청한 적도 없고, 우리의 중재 제의를 받아들인 적도 없습니다. 그들은 협상보다는 전쟁으로 불만을 해결하기를 원하고, 이번에도 와서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포테이다이아에서 철군하고, 아이기나에 자주권을 반환하고 메가라 결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더니, 이번에 온 마지막 사절단은 다른 헬라스인들에게도 자주권을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누구도 우리가 메가라 결의를 철회하지 않으면 사소한 문제 때문에 전쟁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그들은 메가라 결의가 철회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사소한 일로 전쟁이 일어났다는 자책감을 여러분 마음에서 완전히 지우시기 바랍니다. 이 사소한 일이 여러분의 결심과 의도 전체를 떠보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양보하면, 그들은 여러분이 겁이 나서 양보하는 줄 알고 당장 더 큰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단호하게 거절하면 그들도 여러분을 대등하게 대하는 편이 더 좋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지금 피해를 보기 전에 그들에게 순종하든지, 아니면 내게는 이것이 상책인 것 같습니다만, 크고 작은 문제로 양보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것을 두려움 없이 소유하기 위해 전쟁을 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합니다. 대등한 국가가 중재를 거치기도 전에 다른 대등한 국가에게 명령할 경우 거기에 응한다는 것은 요구 사항의 크고 작음을 떠나 예속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양쪽의 전쟁 물자에 관해 상세히 듣게 되면 여러분은 우리가 결코 불리하지만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자작농들이고, 개인도 국가도 돈이 없으며, 장기전이나 해전에는 경험이 없습니다. 그들은 가난해서 자기들끼리 단기전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함선에 해군을 자주 태울 수도 없고, 보병 부대를 자주 파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자면 그들은 자신의 재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그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할 테니까요. 더군다나 우리가 그들의 바닷길을 봉쇄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계속하자면 부가 축적되어 있어야지 분담금 인상만으로는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자작농들은 전시에 재산보다는 몸으로 복무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목숨 부지할 자신은 있어도, 그들의 돈이 먼저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만 전쟁이 예상외로 장기화하면 특히 그렇지요.
펠로폰네소스인들과 그들의 동맹국들은 단 한 번의 전투라면 헬라스인들 전체와도 맞설 수 있지만 이질적인 적에 맞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위기 때 신속한 결정을 내릴 단일 심의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각 도시가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있고 부족도 서로 달라서 저마다 자기 이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뭣 하나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들 중 더러는 적에게 한사코 원수를 갚으려 하고, 더러는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드물게 만나는데, 만난다 해도 공동의 관심사에는 약간의 시간만 할애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씁니다. 또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무관심이 전체의 이익에 해를 끼친다고는 생각지 않으며, 전체의 미래를 보살피는 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저마다 같은 생각을 하게 되니 그들도 모르는 새 공동의 이익은 훼손되고 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은 돈이 없어 방해받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금을 마련하자면 시간이 걸릴 테고, 그러면 계획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데, 전쟁의 좋은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해군은 두려울 게 못 되고, 그들이 우리 영토에 요새를 쌓지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평화 시에도 대등한 이웃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국경에 요새를 쌓기가 어렵거늘, 그들이 쌓을 수 있는 어떤 요새보다 더욱 튼튼한 우리 요새에 맞서 적국인 우리 영토 안에 요새를 쌓기란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이 조그마한 전초기지를 세운다면 약탈을 하고 도주한 노예를 받아줌으로써 우리나라 일부에 해를 끼칠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그들의 나라로 배를 타고 가서 요새를 쌓고는 그곳을 우리의 강점인 해군력으로 지키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지상기지에서 해군 작전을 해본 경험보다는 우리가 해군기지에서 지상 작전을 해본 경험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항해술을 습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페르시아 전쟁 직후부터 익혔지만 아직도 완전히 숙달하지는 못했으니까요. 하거늘 선원이 아닌 농부인 그들이 어떻게 제대로 배울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우리는 대함대로 계속 봉쇄하여 그들에게 훈련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봉쇄한 함선이 적을 경우 무식한 그들이라도 자신들이 수가 많은 것에 고무되어 모험을 할지 모르지만, 봉쇄한 함선이 많을 경우 그들은 가만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훈련을 적게 할수록 그만큼 서투르고 소심할 것입니다. 항해술도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입니다. 항해술은 여가 시간에 부업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 아닌 다른 부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올림피아나 델포이 신전 금고에서 돈을 꺼내 더 높은 품삯을 주고 우리 해군의 이방인 선원을 빼돌리려 하는 경우, 그것은 큰 위협이 되겠지요. 우리 시민들과 외국인 체류자들이 선원이 되더라도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면.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의 적수가 될 뿐더러,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시민들 중에는 더 훌륭한 키잡이와 선원이 나머지 헬라스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더 높은 품삯을 받자고 자신의 도시에서 추방당하고 패배할 위험마저 무릅써가며 펠로폰네소스인들 편에서 싸울 이방인 선원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상이 대략 펠로폰네소스인들의 상황인 듯합니다. 우리에게는 내가 그들의 약점이라고 지적한 그런 약점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갖지 못한 다른 이점들까지 있습니다. 그들이 육로로 우리나라에 쳐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의 나라로 배를 타고 갈 것입니다. 그러면 앗티케 전부가 파괴되는 것이 우리에게 나쁜 것보다 펠로폰네소스의 일부가 파괴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나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은 싸우지 않고는 더 영토를 마련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여러 섬과 해안지대에 영토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해권이란 위대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섬 주민이라면 누가 공격에서 우리보다 더 안전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자신을 되도록 섬 주민으로 여기고 영토와 집은 포기하되 바다와 도시는 지켜야합니다. 그리고 영토와 집을 잃었다고 해서 화가 나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펠로폰네소스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긴다면 더 많은 자들과 다시 싸워야 할 것이고, 우리가 진다면 우리 힘의 원천인 동맹국들도 잃게 됩니다. 우리에게 동맹국들을 강제할 힘이 없으면 동맹국들이 당장 반기를 들 테니까요. 우리가 슬퍼해야 할 것은 집과 영토를 잃는것이 아니라 사람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집과 영토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과 영토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면, 여러분이 나가서 손수 여러분의 재산을 파괴함으로써 여러분이 재산 때문에 펠로폰네소스인들에게 복종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보여주라고 권유하고 싶소.
그 밖에도 여러분이 전쟁 중에 제국의 판도를 확장하려 하지 않고 자진하여 새로운 위험에 말려들지만 않는다면, 여러분의 최후 승리를 자신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두려운 것은 적의 작전이 아니라 우리의 실수입니다.
이 모든 점에 관해서는 전쟁을 하게 될 때 다른 기회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어 라케다이몬인 사절단을 돌려보내도록 합시다. 즉 라케다이몬인들도 우리와 우리의 동맹국들을 그들의 외국인 추방령에서 제외한다면, 우리도 메가라인들이 우리의 시장과 항구들을 이용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고(조약에는 그들의 행위나 우리의 행위를 금지하는 문구가 없기 때문이오) 답변하십시오. 그리고 라케다이몬인들도 그들의 동맹국들에 자주권을 반환하고 각각의 동맹국이 라케다이몬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체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정체를 선택할 권한을 부여한다면, 우리도 조약 체결 당시 자주권을 갖고 있던 우리 동맹국들에는 자주권을 반환하겠다고 답변하십시오. 또 우리는 조약에 따라 중재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으며, 우리가 먼저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겠지만 먼저 공격당하면 대항할 것이라고 말합시다. 이것이 옳은 답변이고, 우리 도시가 마땅히 해야 할 답변입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전쟁은 불가피하며, 우리가 전쟁을 기꺼이 받아들일수록 우리 적의 공격이 덜 날카로워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국가든 개인이든 가장 큰 위험을 통해 가장 큰 영광을 얻는다는 것을. 우리 선조가 페르시아인들에게 대항하셨을 때 그분들에게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과 같은 물자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가진 것도 버리고 운보다는 지혜로, 힘보다는 용기로 페르시아인들을 물리쳐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선조보다 못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든 적을 물리쳐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도시를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삼국연의의 결말이 허무하듯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결말도 허무하다. 수많은 영웅들의 드라마를 뒤로 하고 삼국연의의 결말이 사마염의 통일로 마무리되며 또 다른 5호 16국의 난세로 이어지듯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결말은 페르시아와 손 잡은 스파르테의 승리로 끝이 난다. 파우사니아스와 테미스토클레스와 같은 페르시아 전쟁의 영웅들이 허무하게 몰락하고 난 뒤의 역사는 결국 공동의 적이었던 페르시아까지 끌어들인 치열한 내전 끝에 헬라스 세계의 몰락으로 끝이 나게 된다.
아테나이는 제국과 '긴 성벽들'과 거의 모든 해군력을 잃고, 스파르테의 후원을 받는 과두정부가 지배하는 스파르테의 속국이 된다. 이 사건과 연루되어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스파르테는 그리스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했고, 상황을 오랫동안 좌지우지하지 못했다. 기원전 403년 다시 민주정부가 들어선 아테나이는 다시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하며 스파르테에 불만을 품은 이전의 스파르테 동맹국들과 힘을 모아 스파르테에 대항해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 스파르테는 그리스 내부의 적들과 페르시아를 동시에 대적할 수 없어, 기원전 386년 아시아의 그리스인들을 페르시아에 넘겨주는 조약을 체결한다. 아테네와 테바이를 중심으로 한 반(反) 스파르타 연합군은 스파르테를 참패시키지만 테바이는 이전의 스파르타처럼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아테나이마저 꺾으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헬라스인들의 동족상잔은 필리포스, 알렉산드로스 부자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등장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제국 드라마이니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결국 이에 대한 하나의 프리퀄이 될 뿐인 것이다.
끝으로, 그 자체로 고전이 되어 헬라스 문명의 정수를 보여주는, 페리클레스가 전투에서 사망한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바치는 추도사를 읽어보자.
"지금까지 이 연단에 서서 연설한 사람은 대부분 이런 연설로 장례식을 끝맺는 관행을 칭찬했는데, 그들은 전사자들의 장례식 때 이런 연설을 하는 것을 훌륭한 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비로 치러진 이번 장례식에서 여러분도 보았듯, 행동으로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에게는 행동으로 명예를 높여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미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한 사람이 연설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실을 말한다는 믿음을 청중에게 심어주기 어려운 경우에는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청중 가운데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전사자의 친구였던 사람들은 연설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듣고 싶은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할 테고,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업적에 관해 들으면 샘이 나서, 연사가 과찬을 한다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남들에 대한 칭찬은 각자가 자기도 들은 대로 할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선까지는 용납되지만, 일단 그 선을 넘어서면 시기와 불신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연설을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우리 선조가 인정한 만큼, 나도 당연히 관습에 따라 여러분 각자의 소망과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나는 먼저 우리 선조에 관해 언급하려 합니다. 이런 기회에 그분들을 기억함으로써 그분들의 명예를 높여드리는 것이 정당하고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분들이 대대로 이 나라를 차지하고 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우리가 자유국가를 물려받은 것은 그분들의 용기 덕분입니다. 그분들도 분명 칭찬받을 만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은 더욱 칭찬받을만 합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노고도 불사하며 자신들이 물려받은 것에 지금 우리가 다스리는 제국 전체를 보탠 다음 지금 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여기 모인 나이 지긋한 우리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제국의 힘을 강화하고 모든 면에서 도시를 정비하여 전시에나 평화 시에나 완전히 자족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주제에 관해서는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재산을 하나씩 늘려준 전공(戰功)들이나, 우리 또는 우리 아버지들이 헬라스인들 또는 비헬라스인들의 침략을 과감히 물리친 전투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먼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정신자세와,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준 정체(政體)와 생활 방식을 언급하고, 그런 다음 전사자들에게 찬사를 바칠까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것들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이런 이야기를 들어두는 것은 시민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청중에게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정체는 이웃나라들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 남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에 우리 정체를 민주정치라고 부릅니다. 시민들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합니다. 그러나 주요 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되며, 추첨이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가난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위해 좋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면 가난 때문에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 생활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데 일상생활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 시기하고 감시하기는커녕 이웃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화내거나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데, 그런 표정은 실제로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요. 사생활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참을성이 많지만, 공무에서는 법을 지킵니다. 그것은 법에 대한 경외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때그때 당국자들과 법, 특히 억압받는 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과, 그것을 어기는 것을 치욕으로 간주하는 불문율에 순순히 복종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일이 끝나고 나면 우리 마음을 위해 온갖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사시사철 여러 가지 경연대회와 축제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우리의 가정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날마다 우리를 즐겁게 하고 근심을 쫓아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도시가 크다 보니 온 세상에서 온갖 상품이 모여들어, 우리에게는 외국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자국 물건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습니다.
군사 정책에서도 우리는 적들과 다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도시는 온 세계에 개방되어 있으며, 적에게 유리할 수 있는 군사기밀을 사람들이 훔쳐보거나 알아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을 추방하곤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밀 병기 따위보다는 우리 자신의 용기와 기백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교육체계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라케다이몬인들은 어릴 적부터 용기를 북돋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지만, 우리는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그들 못지않게 위험에 맞설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케다이몬인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올 때는 자기들만 오지 않고 동맹군을 모두 데려오지만, 우리가 적국을 공격할 때는 단독으로 해치우며, 남의 나라에서 싸우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적군을 대개 어렵지 않게 제압합니다.
우리의 어떤 적도 아직 우리의 전군과 맞닥뜨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해군도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여러 곳의 지상전 싸움터에도 부대를 파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군은 어딘가에서 우리의 파견대와 맞닥뜨려 우리 가운데 일부를 제압하면 자기들과 우리 전군을 물리쳤다고 자랑하고, 자기들이 지면 우리의 전군에게 졌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혹독한 훈련에 의해서가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강요에 따른 용기보다는 타고난 용기로 자발적으로 위기에 맞서는데, 거기에는 몇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나중에 당할 고통을 미리 당하지 않아도 되고, 또 막상 고통이 닥치면 우리도 늘 혹독한 훈련을 하는 자들 못지 않게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도시가 칭찬받아 마땅한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럴 이유는 또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고상한 것을 사랑하면서도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으며, 지혜를 사랑하면서도 문약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부(富)는 행동을 위한 수단이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가난을 시인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가난을 면하기 위해 실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곳에서 정치가들은 가사(家事)도 돌보고 공적인 업무도 처리하며, 주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정치에 무식하지 않습니다. 우리 아테나이인들만이 특이하게도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을 비정치가가 아니라 무용지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우리만이 정책을 직접 비준하거나 토의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말과 행동을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보지 않고, 결과를 따져보기도 전에 필요한 행동부터 취하는 것을 최악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다른 백성 사이에는 또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험심이 강하면서도 사전에 심사숙고할 능력이 있는 데 반해, 다른 백성은 무지하기에 용감하고, 그들에게 숙고한다는 것은 주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두려운 것과 즐거운 것의 의미를 명확히 알기에 어떤 위험도 피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정신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선행의 개념에서도 대부분의 다른 백성과 현저하게 다릅니다. 우리는 남의 호의를 받아들임으로써가 아니라 남에게 호의를 베풂으로써 친구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둘 중 호의를 베푼 쪽이 더 신뢰받게 마련입니다. 그는 계속 호의를 베풀어 받은 쪽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간직하기를 원하지만, 받은 쪽이 호의를 되갚아도 자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는다는 생각 때문에 베푼 쪽만큼 열의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돕는 방법도 특이한데, 우리는 손익을 따져보고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믿고 아무 두려움 없이 도와줍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 도시 전체가 헬라스의 학교입니다. 그리고 우리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희하듯 우아하게 자신만의 특질을 개발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이 이 자리를 위한 공허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앞서 말한 자질들을 통하여 획득한 이 도시의 힘이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국가 중에 아테나이만이 막상 시험해보면 그 명성을 능가합니다. 아테나이만이 쳐들어오다가 패배한 적군에게 자기들보다 못한 자들에게 졌다는 원한을 사지 않으며, 속국으로부터 지배할 가치가 없는 자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불만을 사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을 입증해줄 굵직굵직한 증거를 여기저기 남긴 만큼 우리는 지금 사람들에게도 후세 사람들에게도 경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호메로스나,ㅡ 그 밖에 그 미사여구가 당장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도 실체적 진실에 의해 허구로 드러나게 될 다른 시인의 찬사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바다와 육지가 우리의 모험정신에 길을 열도록 강요했고, 적들에게 보복하고 친구들을 도와주었음을 입증할 영원한 기념비를 곳곳에 남겼으니 말입니다.
바로 그런 도시를 위해 여기 이분들이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어간 것이니, 그런 도시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남은 우리도 저마다 그런 도시를 위하여 당연히 노고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우리 도시의 성격에 관해 이처럼 자상하게 말한 까닭은, 이런 투쟁이 우리 같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뜻한다는 점을 밝히고, 여기 이분들에 대한 내 찬사를 증거로 뒷받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내 찬사의 주요 부분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우리 도시를 찬양했지만, 우리 도시를 빛낸 것은 여기 이분들과 이분들 같은 분들의 용기와 무공입니다. 이분들처럼 찬사와 공적이 균형을 이루는 헬라스인들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맞이한 것과 같은 최후는 그것이 최초의 발로이든 최종 확인이든 이분들의 인간적인 가치를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분들 중에는 흠결이 있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이분들이 보여준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은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상쇄하고, 사생활에서 끼친 해악보다 더 많은 선행을 공동체를 위하여 베풀었습니다.
이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모아놓은 재산을 더 오래 즐기고 싶어 겁쟁이가 되지 않았으며, 어느 누구도 살다 보면 언젠가는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겠지 하는 희망에서 위험 앞에 몸을 사리지 ㅇ낳았습니다. 그런 것들보다는 적에게 복수하는 일에 더 마음이 끌렸던 이분들은 이것을 모든 모험 중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겼으며, 다른 것은 포기하고 적을 응징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분들은 성패 여부를 불확실한 희망에 맡긴 채 자기 자신만을 믿고 눈앞에 닥친 현실에 대처했으며, 그럴 때는 굴복하고 목숨을 건지는 것보다는 버티다가 죽는 편이 더 명예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사람들의 비난은 피했지만, 위험에 몸으로 맞서다가 잠시 뒤 위기를 맞아 두려움이 아닌 영광의 절정에서 세상을 하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분들은 이 도시에 어울리는 분들이 되었습니다. 뒤에 남은 우리는 더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구해야겠지만 적들에게 이분들 못지않게 불굴의 용기를 보여야 합니다. 그 이익은 이론적으로 따질 일이 아닙니다. 나도 우리가 적을 물리침으로써 무엇을 얻는지 여러분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 있으며, 여러분도 나 못지않게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히려 여러분이 날마다 우리 도시의 힘을 실제로 보고 우리 도시를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 도시가 위대해 보이면, 우리 도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모험심이 강하고,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지 알고, 의무를 다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 사람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이분들은 설령 어떤 계획을 수행하다가 실패했다 해도 도시가 자신들의 용기를 아쉬워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하고 도시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분들은 공익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그 대가로 자신들을 위해 불멸의 명성과 가장 영광스러운 무덤을 받았습니다. 이분들의 유골이 안치될 무덤이 아니라, 그럴 기회가 날 때마다 말과 행동으로 영원히 추모되기 위해 이분들의 명성이 자리 잡고 있을 무덤 말입니다. 온 세상이 탁월한 사람들의 무덤입니다. 고향 땅에 세운 비문만이 이분들에 관해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땅에서도 이분들에 대한 기억은 기념비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마땅히 이분들을 본받아,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심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너무 망설이지 마십시오. 죽음조차 불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란 더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는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을 경우 운명이 역전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가장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 자신의 비겁함으로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 계신 전사자의 부모들에게도 애도가 아니라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파란만장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분들처럼 명예롭게 생을 마감할 수 있고 여러분처럼 명예롭게 이분들을 애도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며, 인생에서 성공과 역경이 균형을 이루었으니 이분들의 삶은 그래도 행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쉽게 이해되지 않겠지요. 한때 여러분이 자랑스러워하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보게 되면 여러분은 자식들이 생각날 텐데, 사람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빼앗겼을 때가 아니라 친숙해진 것을 잃었을 때 괴로운 법이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가운데 아직은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나이에 있는 이들은 다시 아들들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 자식은 여러분의 가정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자식들을 잊게 해줄 테고, 인구가 줄지 않게 하고 안전을 지켜줄 테니 도시에는 두 가지 이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남들처럼 자기 자식을 위험에 내맡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공평하고 공정한 정책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자식을 낳을 나이가 지난 이들은 행복하게 보낸 인생의 더 많은 부분을 이익이라고 여기시되, 남은 부분은 길지 않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죽은 아들들의 명성을 생각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명예욕만이 늙지 않으며, 몇몇 사람이 말하듯, 나이 많아 쓸모 없어진 시기에는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여기 모인 전사자들의 아들과 형제 여러분에 관해 말하자면, 여러분 앞에 힘든 과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누구나 고인은 찬양하게 마련이며, 여러분이 엄청나게 큰 공적을 쌓아도 이분들과 대등하지 않고 조금은 못한 것으로 평가받을테니 말입니다. 살아 있을 때는 누구나 경쟁자들의 시기를 사지만, 죽은 자에게는 누구나 경쟁심이 없어져 따뜻한 경의를 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제 미망인이 된 부인들에게 부덕(婦德)에 관해 한마디 해야 한다면, 짤막한 조언으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타고난 본성에 따라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의 큰 명성이 되겠지만, 여러분의 가장 큰 명성은 칭찬을 받건 비난을 받건 남자들의 입길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관행에 따른 연설에서 해야 할 말을 다 했습니다. 또한 여기 묻힌 분들에게 제물을 바침으로써 우리는 행동으로도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국가가 이분들의 자녀를 어른이 될 때까지 국비로 부양할 것입니다. 이것이 고인이 이런 시련을 겪은 데 대한 보답으로 고인과 그 자녀들에게 국가가 바치는 상(賞)이자 영관(榮冠)입니다. 용기에 가장 큰 상을 주는 도시에는 가장 훌륭한 시민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친척을 위해 충분히 애도했으니 이제는 이곳을 떠나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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