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랑스러운 세 기업가 모델

  어떻게 해서든 기술 창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상, 어떤 형태로든 실천을 내놓아야 한다. 나는 어떤 일에 돌입하기 전, 배우고 몰입할 롤 모델을 찾는 버릇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영학도들이나 창업 꿈나무들을 보면 기업가 정신의 롤 모델을 외국의 경영자에게서 찾곤 한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손정의, 마윈, 피터 틸, 젠슨 황, 샘 알트먼 등 세계를 놀라게 한 혁신가는 많다. 세계 시장을 무대로 꿈을 꾸는 친구들인 만큼 실리콘밸리의 세계급 경영인에게서 자신의 롤 모델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그에 대한 대안교과서도 쓴 나로서는 외국에서만 좋은 경영 사례를 찾기보다, 한국의 경제 기적에서 탄생한 위대한 세 경영 모델을 되돌아보고 싶다. 이 세 경영 모델은 한국적이면서도 또한 세계적이기까지 하다.

  하나는 이병철-이건희 부자의 삼성그룹이 지향한 '일등경영'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 등의 경영 모토를 내세웠고 이건희 회장도 '신경영'에서 수많은 화두를 던졌지만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1등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일등경영'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의 삼성 비서실은 참모본부를 닮아 늘 발전 과업에 국가의 명운을 걸어야 했던 한국의 국가적 고민을 능란하게 해결해왔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은 이병철 모델에 안주하지 않고 '초격차'로서 일본 전자기업들을 따돌리며 삼성전자를 한국의 1등 기업이 아닌 세계의 1등 기업으로 비상케 했다. 그렇게 일궈낸 '세계의 1등' 삼성은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 갇히지 않고 국가·사회 차원의 혁신을 이룰 수 있게 견인했다. 안주하지 않는 위기 의식, 자신을 1등으로 만든 성공 공식을 과감히 버리며까지 처절하게 자신을 혁신해낸 '신경영'의 '초격차'로 경쟁자를 따돌리는 삼성의 방식은 성공을 꿈꾸는 모두에게 보편적인 모델을 제공할 것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진양철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3가지

이건희, 기업인의 언어가 아닌 사상가의 언어로

  둘은 현대 정주영의 '도전경영'이다. 1세대 기업인 중 도전자 아닌 이 누가 있으랴만, 정주영 회장의 도전 정신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봐, 해봤어?"로 요약되는 그의 중후장대 산업에의 도전들은 아무런 기반이 없는 산업의 황무지였던 최빈국 대한민국에서 기적을 만들어낸 호연지기 그 자체였다. 

  정주영 회장은 비록 권위주의 군사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지만, 아무 산업 기반이 없는 허허벌판에서 실패하면 어떤 나락이 기다릴지 모르는 대담한 대형 사업들에 과감히 뛰어드는 저돌적인 경영인이었다. 그런 정주영이었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도 누구라도 위축될 거대한 도전들을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건설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이명박 전 회장의 말처럼 정주영 회장은 후진국 한국에서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대담한 도전을 통해 믿을 수 없는 비약을 이루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정주영의 모델은 큰 영감을 줄 것이다.

당신은 가치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아는가? - 정주영 회장(Hyundai)

현대의 돌관주의 경영

  셋은 대우 김우중의 '세계경영'이다. 정규재 논설실장은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에서 쓴 '대우패망비사'에서 대우의 기업 방식을 울림이 있는 시적인 언어들로 묘사한 적이 있다. "시대를 정면돌파해 나간 모험가"이며 "중심은 아닌, 그래서 변방이며, 1등은 아닌, 그래서 차순위의 질서를 추구했던 야만지대의 정복자", "변방을 질주하여 문명을 포위한 대담한 도전가" 이 문장들은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김우중은 후진국 변두리 국가에서 단순한 사업을 하는 이가 아닌 한국식 경제개발 모델 그 자체를 수출하는 질주하는 종합상사 군단장 그 자체였다. 김우중 회장의 신흥국 진출방식은 공장 한두 개를 짓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부흥계획을 통째로 들고 들어가는 패키지 방식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신흥국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개발, 미국의 경제 시스템 내에 두고 싶어했을 게 자명했지만, 김우중은 이와는 다른 독특한 방식을 들이댄 것이다. 특히 김우중 회장이 국내에서 익힌 '정경유착의 효율성'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급속도로 신흥국을 장악하는 과정은 고고한 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지독한 일벌레, 세계경영의 꿈을 심다

세계경영은 옳았다

  김우중 모델이 충분히 '미국적'이지 못하고 충분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치지 못해 IMF 이후 우리가 잃어버린 경영모델이 되었지만,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모험을 꺼리고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를 싫어하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축소 지향의 기질을 가지게 된 지금 김우중 모델의 의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인이 모험가 정신이 충만한 확장 경영의 대우를 잃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적 경쟁 문화에 지친 이들이 말 그대로 힘없이 거세되어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호연지기와 의기를 간직한 채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희망적일까. 도전 정신과 실력을 간직한 채 국제 무대를 배경으로 다시 질주한다면, 대우의 모델 역시 우리가 되새기고 배울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한국이 충분히 발달한 나라가 되다보니 이제 열등감을 가지고 잘 모르는 나라의 모델을 더듬어가기 보단 우리 사회의 풍토와 역사에 기초한 기업가 정신을 당당히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낸 한국의 기업가 모델이 어떤 것이었고, 그것이 지금의 환경과 어떻게 달라 어떤 부분을 업데이트하여 보완해 나가면 될 지를 고민하면 한국의 기업 전통이 후배들의 또 다른 기업 혁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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