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전공인 영어교육과 평생교육

   내 원래 전공은 영어교육과다. 사실 교육대학교 출신이라 전공은 의미가 없다. 심화전공은 그저 들어올 때의 점수로 지망하는 과에 따라 끊을 뿐이고, 영어교육과라고 해서 영어교육에 대해 더 심화적으로 배우는 것도 많지 않다. 그 누구도 관심 없고 선생이 된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입학 당시 높은 점수로 교대에 들어왔다는 의미만 담고 있을 뿐이다. 단지 영어교육과라며 4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영어과 교수님들께 지도를 받으며 '내가 영어과구나' 생각해본다는 의미 정도는 있을지도 모른다.

  기왕에 영어과를 온 김에 영어교육이라는 프레임을 중심으로 교육 문제를 연구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막연한 목표도 있어서 대학원 입시에서 본다는 비싼 영어교육학, 영어학, 영문학 원서들을 사 공부하기도 했다. 교육의 빈부격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과목, 교육의 계급적 분배가 가장 과격하게 이루어지는 분야가 영어교육 분야라고 생각했기에(당장 어릴 때부터 어느 정도의 몰입적 영어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사교육을 꾸준히 접하냐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으므로) 방과후학교 영어교실의 실태나 초등학교 영어과 교육과정이 과연 얼마나 쓸만한 영어능력을 '보급'하고 있느냐를 주제로 삼아 연구해보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서 이재명 정부의 영어유치원 금지에 이르기까지, 영어교육은 영어교과가 1997년 등장한 이래 꾸준히 중요한 떡밥과 관련이 있었다. 영어교육학을 공부한다는 게 나름대로 이 사회에서 계속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에 대한 진지한 참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와선 뚜렷한 답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문제에 대한 참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할까.

  영어교육 대학원을 가겠다는 목표는 사라졌다. 준비에 게을렀던 것도 있고, 이전처럼 학부 전공을 대학원 단계로까지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도 약해졌다. 강석화 교수님은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빨리 대학원 학위를 해결해서 정책 쪽으로 빠지면 된다고 했지만, 원하는 학교에 발령받지도 못하고 남들보다 바쁜 업무 일정에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국 영어교육 대학원이라는 목표는 몇몇 원서를 읽는 것으로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영어로 완독한 도서 리스트를 추가할 수 있었으니 완전 헛되지는 않았다고 해야할까.

  이후 AI 시대의 전격적인 등장과 함께 내 진학 방향은 컴퓨터과학을 기초부터 공부하는 것으로 다시 맞춰졌다. 당장의 편리함보다는 의미 있는 공부를 통해 보다 높은 차원의 실천을 달성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느 전공인들 요새 그렇지 않겠냐만, 컴퓨터과학은 영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넘어선 개방적인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학문이었다. 공부의 대상이 되는 코드들은 온라인 공간에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있었고, 수많은 인도인 개발자들이 인도식 발음의 영어로 수많은 주제의 컴퓨터 사이언스 강의들을 제공하고 있었으며 미국의 여러 명문 공대들이 컴퓨터과학과에 한정해서 온라인 개방대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코세라에서 운영하는 컴퓨터과학 강의들이나 구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자격들은 개발자 취업에서도 활용되고 있었다. 영어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이들은 누구나 소정의 학력을 갖춘 개발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더 이상 20대 초반의 입시 결과로 모든 진로가 해결되는 시대가 아니다. 재사회화와 재교육은 계속 이루어지고, 일자리와 배움터는 국경 안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나 역시 20대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새롭게 전공 분야를 찾아 공부를 시작하며 영어로 학습자료를 찾고 유학을 꿈꾼다. 스무살 때 정한 영어교육과란 전공은 내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수법과 교육철학을 정립함에 활용됨은 물론 다음 전공을 택하고 공부하는 데 징검다리가 되기까지 한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갈수록 표준화된 교육 내용에 매몰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학습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어떤 교육학자들은 지식을 중시하는 기존의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나는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주도하기 위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중요한 건 지식을 어떻게 습득하느냐, 지식에 어떤 태도를 가지냐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영어교육학은 새로운 것을 끊임 없이 습득해야 하는 평생학습자들에게 필요한 학습능력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영어교육학은 아동과 청소년 뿐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평생학습을 지원해야 하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추구했던 영어교육학도 EFL 환경에서 어떻게 영어로 된 지식 뭉치들을 주도적으로 습득하여 능숙하게 영어권 화자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느냐에 대한 연구였다. 여기서 critical period에 영어를 습득했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적 거리는 멀지만 그를 단축하여 많은 이들이 영어를 더 쉽게 배워 평생학습에 필요한 충분한 인지적 자원들을 동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핵심적인 문제 의식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영어교육은 평생교육과 관련된 전공이고, 그런 의미에서 내 영어교육에 관한 문제 의식과 인연도 내가 이제 와서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고 해서 바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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