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의외로 허업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업(業)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어느 날 이건희 회장이 물었다고 한다. "술집 매니저의 업의 개념은 무엇인가?" 이건희 회장의 선문(禪問)에 맞춰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술 취한 고객을 관리하는 것이다." 등 여러 답변이 나왔지만, 결국 이건희 회장이 생각했던 "외상값을 잘 받아내는 것이다."라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호텔신라 사장에게 호텔업의 개념을 물었을 때 ‘서비스업’이라고 답하자, 이건희 회장은 “호텔업의 본질은 부동산이고 장치 산업이 아니냐”고 되물었고 "삼성카드는 외상값을 잘 받아야 한다. 즉, 채권 관리가 핵심이고 보험업은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 중요하고, 증권업은 상담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백화점은 부동산업, 가전은 조립양산업, 에스원은 단결력이 업의 본질이고 반도체는 시간 산업이다.”라는 이건희 회장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서로에게 회자되었고 종국에 자동차 산업 또한 화석연료를 대체하여 수소연료나 전기에너지를 동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산업이 전환되면 기계장치 산업에서 전기·전장 산업으로 업의 본질과 패러다임이 변화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했다고 하니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교육업의 본질이 '저부가가치 소매업'이라고 생각했다. 김종필은 '정치란 허업(虛業)이다'라고 했지만, 나는 '교육 또한 허업'이라고 하고 싶다. 물론 훌륭하게 자라 다시 날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교육이라는 것이 허황되고 허무하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정치라는 것은 사회 자원의 권위적 분배를 통해 얼마나 사회를 크게 바꾸고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데, 얼마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데 이를 허업이라 하겠는가. 지나고 보면 하나하나 그렇게 집착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일희일비 하는 것 자체가 허망한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교육은 정치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물론 나도 30대 중반 나부랭이라 교육이고 정치고 제대로 된 경험도 없고, 함부로 논할 위치가 아니기는 하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세 가지 큰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는 추상적인 가치를 다룬다는 점이다. 교육이든 정치든 듣기 좋은 말을 잔뜩 내세우는 분야다. 그래서 똑바로 정신을 차리지 않고 가치개념을 명료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말의 성찬에 허우적거리며 무엇을 해야하는지 완전히 방향을 잃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현실의 문제이며 절박하게 현장에 뛰어들어 해결해야 하는지 성찰이 없으면, 편한 자리에 앉아 리스크를 짊어 지고 위험한 현장에 뛰어든 이들을 온통 아름다운 낱말로 치장된 말로 지적질하고 평가질하는 치졸한 수준에서 발전이 없게 된다.

두번째는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정치야 그렇다 치고, 교육에서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권력의 문제다. 일단 공교육이 국가의 돈으로 인간을 훈련하고 변화시키는 과업이기 때문이다. 중앙정치의 승자가 된 정파가 원하는 내용을 가르치라는 요구에서, 교실에서 학생들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교실 안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권력이 개입한다. 특히 교실에서 학생들과 1년 살이를 꾸리는 데 권력은 매우 중요하다. 교사가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올바르게 학생들과 운용할 수 있느냐는 학급운용의 핵심이다. 사랑도, 훈육도, 교화도, 감동도 결국 권력의 함수로 이루어진다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가 실질적으로 교육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권력이라는 것을 쉽게 잊고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번째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치든 교육이든 사람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운용하는 지에 핵심 과업이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는가. 정치에서 무슨 과업을 관철하여 어떤 업적을 남길 것인지나, 교육에서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떤 수업을 하여 학생들을 적합한 도착점 행동으로 이끌 것인지는 결국 누구를 어디에 앉혀 무엇을 시키느냐에 걸려 있다. 이는 세상을 알고, 인간을 알고, 권력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운용하느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결국 정치와 교육은 그것을 두르고 있는 이미지의 외피를 벗겨 놓고 보면 그 수행 과업의 형태와 성격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스개로 두 가지를 더 꼽자면, 네 번째는 두 분야 모두 '선생님'이 한다는 데 있고 다섯 번째는 자유자재로 구사하되 절묘하게 말조심을 해야한다는 부분이랄까.

때로 모든 걸 교육에 기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회 문제가 생기면 만능적인 해결책으로 OO교육을 추가한다는 식으로 법을 만들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물론 나도 2년도 더 전에 교육플러스에 교육이 사회 문제 해결의 도구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제의 논설을 쓴 적이 있다. 교사의 능동적 역할에 기대가 크던 시절이었다.) 그 결과 학교는 온갖 특별법으로 급조된 일회성 OO교육으로 넘쳐난다.

정치 활동에 열성으로 참여하며 청춘을 소진하다 삶에 지쳐 이제는 후배 세대를 기르는 '사과나무를 심는 일'에만 전념하고 싶어 교육에 큰 기대를 가진 분도 계시다. 그러나 사실 교육도 정치 못지 않게 허업이며 결국 환희보다는 실망이 많은 부대낌의 연속인 현장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분은 정치를 떠났듯 교육도 떠나게 되실까. 자신의 철학과 비전에 도취돼 구호에만 매몰된다면 잘 모르는 이들이 교육에 거는 막연한 기대와 달리 교육 역시 정치 못지 않은 허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매일 교실에서 일하는 이들은 알고 있다.

또한 실망과 냉소에 가득차 인간의 변화를 믿지 않게 된 가련한 이가 정치든 교육이든 무언가에 기대를 건다는 것이 참 모순적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교육 또한 흔한 허업일 뿐이니 지나치게 의미와 낭만을 부여하여 자신의 고상함에 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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