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북스 4: 퀀텀의 세계

 지난 번에 독후감을 챗지피티를 돌려 10초 만에 생성한 걸 눈 밝은 혜경님에게 들켜 신용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직접 쓰고 있다. 세상에 이 글들을 다 읽는 것만으로 대단한데 문체를 가지고 사람이냐 인공지능이냐를 분별할 수 있는 정도로 읽으시다니....

 엉뚱하게도 제목부터가 <퀀텀의 세계>인 이 책을 읽고, 나는 두 가지 화두에 꽂혔다. 하나는 내가 속한 교육에 대한 것이고, 하나는 중국 버전과 미국 버전 모두로 본 '삼체'라는 드라마였다. 생각해보면 '삼체'도 결국 연구와 함께 교육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쓴 이순칠 교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양자역학이라는 굉장히 어려운 주제를 자신의 일화와 탁월한 비유, 재밌는 설명으로 나 같은 문외한에게도 개념이 전달되게끔 친절하게 안내한다. 책을 읽다 '내가 대학을 들어간 1970년대에도'라는 구절을 만났을 때 정말 놀랐다. 자유자재로 현란하게 유머를 구사하는 작가를 보고 그렇게나 나이가 많을 줄은 짐작도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정말 독자친화적이지 못한 교재들을 보면서, 군대에서 알아보기 정말 어렵게 쓰인 군사 교재와 교범들을 보면서 '이렇게 직관적이지 못하고 어려운 용어들을 설명도 없이 봐서 이해하기 힘든 인터페이스로 제공하면 오히려 텍스트가 쓰인 본래의 목적에 맞게 기능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쉽기 짝이 없어 누가 대대적으로 다시 쓰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는데 그 어렵다는 양자물리를 이렇게 쉽게 풀어쓴 노 교수님이라니, 대중 과학교육의 역사에 남을 분이다.

  하지만 나 역시 대중인지라, 양자물리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진리는 경험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진리는 보이는 너머에 있다'는 플라톤의 명제가 옳았던 것일까. 아주 작은 단위, 아주 큰 단위로 가면 작용하는 물리 법칙이 달라지는 양자 물리의 세계는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영역 너머에서 오로지 순수이성을 드높인 끝에 도달한 새로운 지점이었다. 이것은 결국 경험되는 세계에서의 데이터 관측을 수학과 함께 고도로 높여 법칙을 축적해 발전한 뉴턴역학이 경험으로서 알 수 없지만 인지적 능력으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며 도달할 수 있었던 지식 발전의 쾌거였다. 멋있게 말했지만, 다 읽어 놓고서도 양자 역학은 역시 잘 모르겠다는 자기 고백과 비슷한 말이다. 솔직히 양자 역학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내가 방금 쓴 문장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했다. IT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여 큰 발전을 이루고 성공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자기 자신을 소재로 한 실험과 도전이었다. 정보통신의 발전과 컴퓨터과학의 기반은 양자역학에서 비롯된 새로운 세계관과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인간은 원자 단위의 양자 현상에 대한 이해력을 필요로 하는 초미시 세계에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트와 초고집적 회로 트랜지스터를 기반으로 한 정보 전달과 그를 통해 구성하는 소프트웨어의 세계가 아니라 아직도 증기기관과 기계터빈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반도체로서 완성한 현대 인류사에 빛나는 대한민국 경제사의 기적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에 빛나는 K-대중문화와 전 세계인의 의료 관광을 이끌어낸, 한국 자본주의 문명 특유의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특산물인 성형의학이 크게 빚지고 있는 레이저 기술은 또 어떤가.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내가 새로이 몸담은 분야가 어떤 지적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아니 그것만 알지 못했을까. 전공 기초에 대한 건 모르는 게 대부분이다.

  '삼체'는 양자 물리학에 기반을 둔 삼체 외계문명이 고전 물리학에 기반을 둔 지구 문명과 부딪혔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다룬 SF 드라마다. 물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다 보니, 태양계의 지구와 다르게 중심이 되는 항성이 세 개일 때는 서로 중력장을 형성해 물리 운동을 예상할 수 없는 극도로 혼란한 카오스가 형성된다는 정도로 대충 이해했다. 그러한 삼체 문명의 입장에선 안정된 공간인 지구가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였고, 삼체인들이 지구 문명이 더 고도화되기 전에 지구 문명의 과학 발전을 막으면서 지구를 침략하려 한다는 상상력이 '삼체'의 기본적인 세계관이다. 여기서 지구의 과학자들은 지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 물리학의 한계를 느끼고, 때론 외계 문명의 집요한 방해 때문에 절망을 느끼며 자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맞서겠다는 인간의 주체의지는 연구와 교육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예정된 그들의 침략 시점을 카운트다운하며 정해진 시간 아래 과학문명을 발전시키겠다는 그들의 모습은 짧은 시간 안에 근대화를 이루어 서세동점의 시기 임박한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막겠다는 동아시아 삼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대항해시대의 모티프로 외부세력을 향한 모험과 개척을 그리는 서구 기반의 SF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양자역학을 더듬거리며 공부하는 우리의 모습은 그러한 지구 문명의 모습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전 글에서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개화된 문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개항기 선비의 심정으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한 바가 있다. 컴퓨터과학도 그렇지만 양자역학이야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 '고전 컴퓨터'의 디지털 논리회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전 컴퓨터가 만들어낸 소프트웨어 세계의 언어 소통도 쩔쩔 매는 나에게 양자 컴퓨터가 이루어내는 새로운 발전과 그것이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상상하는 것은 아득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기 힘들고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그것이 실제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결정하진 않는다. 세상은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에 맞서 대응해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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