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빅 해커에 대해
원래 전공이 컴퓨터과학이 아니라 교육학이고 어렸을 때부터 정치·사회 영역에 큰 관심을 두고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었던 탓에 개발에서 새로이 경력을 시작하며 끌렸던 키워드 중 하나는 '시빅 해킹'이었다. 기술과학을 배워도 그걸 사회 영역에서 구현해 유의미한 실천으로 이끌고 싶은 욕심이 있었달까. 정치 신문을 자주 읽기 때문에 조선일보에서 대만의 최연소 디지털부 장관 오드리 탕의 이야기를 보고 감명을 받았는데, 그가 대만의 유명한 '시빅 해커'라는 말을 듣고 시빅 해킹은 뭐고 시빅 해커는 또 뭐야 하며 새롭게 접한 용어들에 빨려들 듯 관심이 생겼다.
https://www.socialimpact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706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EB%B9%85_%ED%95%B4%ED%82%B9
결국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이냐' 또는 '어떤 변화를 기획할 것이냐'였던 것이다. 그것은 사업의 영역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의 영역이 될 수도 있으며 정치운동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나열한 그 영역들도 확연히 구분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시빅해킹'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공공적인 가치를 구현하기 때문에 어딘가 눈 먼 돈을 받고 구색만 좋은 앱이나 웹을 개발해 대충 내놓으면 될 것 같은 좌파적 느낌이 강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결국 정치나 교육이나 명분을 내걸고 세일즈를 하는 분야라, 시장에서는 크게 평가받지 못할 재화나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그것을 명분을 덕지덕지 같다 붙인 의미로 치장하여 인정을 받고자 한다는 점에선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위의 소셜임팩트 뉴스 링크를 클릭하면 알 수 있듯이, '사라지는 도시의 공간과 문화, 모습을 아카이빙하기', '아시아의 시민기술을 연결하자', '디지털 민주주의 워크숍' 등 어딘가 직접적인 사람들의 수요에 대응하기보단 공공성에 호소하려는 기획이 많다.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말 앞세우는 좌파들이 잘난 척 하며 끼어들기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빅 해커라는 개념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단지 유치한 좌파적 감성의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적 주권을 확립하고, 국가와 지역 공동체의 회복력을 높이며, 나아가 자유사회의 시민적 자율성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빅 해킹이 주로 '좌파적 코드'로 실행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좌파의 전유물은 아니다. 당장의 시장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의 편리성을 증진시키는 일상의 공공적 기획은 물론이고, 나 같이 우파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도 시빅 해킹은 ‘국가와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능동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시빅 해커로서 국가안보의 새로운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국방과 안보는 총칼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전장에서의 기술 주권, 데이터 독립성, 공공 인프라의 사이버 보안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예컨대 사이버 공격이나 정보 왜곡, 여론 조작은 전통적 무력 이상의 파괴력을 갖는다. 시빅 해커는 이런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방어막이자, 시민 스스로가 참여하는 자율적 보안 시스템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빅 해킹은 국가의 안보와 개인의 자유를 동시에 수호하는 새로운 우파적 실천일 수 있다.
대만의 오드리 탕은 그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그는 단지 트랜스젠더 개발자이자 최연소 디지털 장관이라는 정체성 이상의 존재다. 중국공산당의 지속적인 침공 위협 속에서, 대만의 정보 주권을 지키고 디지털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그는 상징 그 이상의 실체였다. 한 명의 개발자가 국가 전체의 디지털 생태계를 설계하고 방어한다는 것은, 개발자가 단순한 ‘코더’를 넘어 국가의 상징적 인물이자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나에게 있어 오드리 탕은 시빅 해커로서의 길이 단지 NGO 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다.
이처럼 시빅 해킹은 철학과 가치가 주도하는 개발의 한 방식이다. 좌파가 공공성을 말할 때 추구하는 도덕적 명분만이 아닌, 우파가 말하는 자유와 질서, 자율성과 공동체의 책임을 함께 구현할 수 있는 실천이기도 하다. 무정부적 해커가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자유민주 사회를 강화하기 위한 보수적 시빅 해커, 그것이 내가 그리는 미래의 개발자 상이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코드를 짜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의 자유를 지키는 기술 전략가’로서의 개발자 말이다.
결국 나는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그 자유가 몇몇 특이한 변덕을 가진 권력자들의 방종 및 체제를 위협하는 비우호적 단합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질서와 책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시빅 해커로서의 비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나는 AI 시대, 디지털 사회, 불안정한 지정학 속에서 오히려 기술에 기반한 가치의 회복, 공공영역의 효율화, 정보주권의 확립이라는 가치가 보수적 관점에서 더 절실하다고 믿는다. 내가 시빅 해킹을 공부하고, 실천하려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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