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컴퓨터과학 3

내가 인생의 다음 단계를 설계하고자 결심했을 때, ‘컴퓨터과학’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기능적으로 취업을 위한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 또는 단순히 코드 몇 줄을 치며(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일을 벌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나는 이 새로운 지적 영역이, 내가 10대 때부터 집중해온 어떤 사상적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근대화라는 이름의 화두였다.

중학생 시절의 나는 청말(淸末)의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운동에 매료되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삼국연의를 반복해 읽고(주로 이문열 삼국지였지만 다양한 버전의 삼국지를 읽긴 했다) 삼국시대를 전후한 시대를 시작으로 중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나에게 중국은 단순히 시끄러운 중국어를 쓰는 이웃나라 낯선 땅이 아니었다. 지역으로서의 이탈리아에는 관심이 없어도 로마사에는 열광하는 감성이랄까. 

중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세계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메이지유신과 대조되어 실패한 중국의 근대화 운동은 유독 흥미를 끄는 데가 있었다.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중국인들이 오랜 시간 자부심을 느꼈던 전통적 세계관과 문명을 수호할 것인가, 일본처럼 혹독한 자기부정을 견디며 납작 엎드려 서구 근대문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사이에서 처절하게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을까.

쇠락해가는 청나라의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변발을 하고 넓은 소매의 옷을 입은 신사들이 서양의 수학을 익히고 기계공학을 공부하며 낯선 세계를 더듬으며 국운을 일으켜보려 발버둥치던 그 모습이 어린 내게는 일종의 슬픔과 처절함, 의지,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가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으로 다가왔다. 어떤 이들은 낙후한 문명을 짊어지고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스스로를 갈아 넣었다. 근대라는 말은 그런 몸부림 위에 쓰인 이름이었다. 그것은 비슷한 근대사를 가진 한국사에서도 유사한 모습으로 반복되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메이지유신기의 일본에 관심이 옮겨갔다. 삼국지의 영향으로 신장의 야망 시리즈에도 발을 들이고 중3 때 시바 료타로의 소설에 빠져 일본 전국시대와 메이지 시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쇄국과 사무라이 전통을 고수하던 막부 말기, 무사들이 은밀히 프랑스어 문법서를 필사하고, 난학자들이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된 과학서적을 번역하던 모습. 그리고 그것을 국가 체제 개조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산출하고 실천해낸 메이지 정부. 그것은 나에게 문명 차원의 자기개조, 전근대적 습속 및 질곡으로부터의 자기해방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일본이 이른 시기부터 ‘문명’이라는 개념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이식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철학적 존재론이자 대전략이었다.

나는 철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오래도록 '인간존재의 기반이 되는 문명의 작동 원리를 고찰하는 정신적 작업'이라는 식으로 이해해왔다. 그러한 사유의 방식이 있었기에, 나는 대학 시절에도 주로 교육학을 바탕으로 하는 전공 수업보다는 독서회 활동에 더 열심이었고(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철학과 굴뚝청소부』나  『인간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서양사상의 역사』 같은 철학 개론서 성격의 책들에서 요점을 뽑아 각 시대의 정신을 읽는 일에 몰두하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초보적 시도들이 바로 지금의 AI 대전환기에서, 나를 컴퓨터과학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빅 데이터. 이 모든 단어들은 단지 기술적 용어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근대 문명의 탄생이 인쇄술·화약·나침반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과 함께 가능했듯이, 지금의 AI 전환 역시 새로운 문명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훨씬 적절하다. 컴퓨터과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전환의 내부 언어를 체득하고, 그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는 문법을 익히며, 나아가 스스로 그 언어를 써서 구조물을 설계하는 존재로 변모하는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교육학을 공부했던 내가 컴퓨터과학을 새롭게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사상적 노정 속에서였다. 그것은 단순한 이직이나 기능적 전환의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가 품어왔던 철학적 질문들—사회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문명은 어떻게 진보하는가, 인간은 어떤 상징적·제도적 기반 위에서 존재하는가 —에 대해 기술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 수학과 논리, 프로그래밍 언어, 알고리즘, 데이터베이스, 네트워크 시스템 등의 컴퓨터과학 기반 지식은 결국 그러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이자 사상이었다.

대학생 시절, 중국의 『대국굴기』라는 책을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중국이 어떻게 스스로 근대화의 경로를 탐색했는지, 이제 막 초강대국이 되기를 꿈꾸는 중국의 시선에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어떻게 경제·군사·과학의 영역에서 ‘부국강병’을 이루었는지를 추적한 그 책은, 내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사유의 틀에 구체적인 좌표를 제공해주었다. 특히 국가의 문명 대전략과 개인의 정신사적 사유가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은 내게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나는, 컴퓨터과학이라는 새로운 전공을 시도하며 21세기판 문명개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청나라 말기 지식인들이 스스로 기술과학을 공부하며 '서양을 배우자' 했던 것처럼, 나도 스스로 터미널을 켜고 명령어를 입력하며,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여정은 나에게 있어 과거의 문명사적 고민을 오늘의 기술문명 속에서 구현해보는 일종의 ‘실천하는 철학’, '실천하는 교육'이다.

  나는 이 여정이 단지 개인적인 직업 전환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더 나은 실천, 더 나은 자유 민주주의, 더 나은 근대 교육, 더 나은 사회 제도에 대한 상상력으로 확장되길 바라고 있다. 기술이 단지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과 새로운 세계를 구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도구가 다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증진시키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문명을 재구성하는 개화기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컴퓨터과학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나 자신의 문명개화와 철학적 문제 의식을 구현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속한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함이다. 그것이 교육학도였던 내가 기술의 세계로 건너간 이유이자, 철학을 좋아했던 한 대학생이 컴퓨터 코드의 세계에서 다시 철학을 시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치 상투를 자르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개화기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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