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컴퓨터과학 2

 철학과 컴퓨터과학은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인다. 속되게 말해, 하나는 문과에 속하고 하나는 이과에 속한다. 하나는 문명의 역사시대에 출발해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인간 사유의 학문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태동한 현대 기술의 정수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두 영역은 놀라운 유사성을 품고 있다. 철학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컴퓨터과학은 세계를 ‘어떻게 모델링하고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전자는 개념과 논리를 통해, 후자는 알고리즘과 자료구조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작동시키려 한다. 철학이 사유의 엔진이라면, 컴퓨터과학은 실행의 설계도다.

특히 형이상학과 논리학은 컴퓨터과학의 뿌리와도 같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에서의 클래스와 인스턴스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사물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그대로 컴퓨터 과학의 ‘부울 대수(Boolean Algebra)’나 ‘논리 회로 설계’로 이어지고, 철학적 분석의 전통은 프로그래밍 언어 이론과 알고리즘 분석에 닮은 방식으로 구현된다. 철학에서 말하는 ‘전제 → 추론 → 결론’의 체계는 프로그래밍의 ‘입력 → 처리 → 출력’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다시 말해, 철학은 문제를 정형화하고 사고를 명료화하는 훈련이며, 컴퓨터과학은 그것을 실제 시스템으로 환원시키는 기술이다.

철학과 컴퓨터과학의 결합은 단지 이론적 친연성에 그치지 않는다. 두 분야가 만나면, 우리는 ‘기계적 사고’가 아닌 ‘사유하는 기술’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윤리 문제, 알고리즘의 공정성, 디지털 시민권 같은 논의는 기술적 구현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때 철학은 문제의 근본 구조를 묻고, 컴퓨터과학은 그것을 구체적인 설계로 번역한다. 또한 철학은 컴퓨터과학자에게 “우리는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를 묻고, 컴퓨터과학은 철학자에게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둘 사이의 왕복 운동은 혁신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둘이 단지 병렬적인 공부 대상이 아니라, 서로를 증폭시킬 수 있는 파트너라고 믿는다. 철학은 내가 '사소한' 기술적 문제들에만 함몰되지 않도록 나침반이 되어주고, 컴퓨터과학은 철학이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실천의 언어가 되어준다. 사유의 깊이와 구현의 능력, 이 두 가지를 함께 갖춘 사람만이 AI 시대의 본질적 문제들을 해석하고, 진짜 의미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시너지의 가능성을 붙잡고 싶기에 나는 두 길을 함께 걷고 있다. 마치 팔란티어의 알렉산더 카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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