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북스 1: IT세계의 괴물들
'전공 저변을 쌓는다'
2024년에 컴퓨터과학과 편입을 결정하면서 내가 내세운 논리였다. 보통은 국비 부트캠프나 학원에 들어가 코딩 기능을 훈련받는 것으로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겠지만, 나는 챗GPT의 등장과 함께 단순한 코딩 기능 연마만을 목표로 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개발자들이 대체되고 있다는 소식이 속속 유튜브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33세에서야 코딩을 시작하는 나 같은 사람이 기계적이고 단순한 코딩 기능 훈련에 집중해 12, 13살부터 코딩에 정을 붙여온 사람들과 기능을 경쟁한다는 것이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육자로서 이치에 맞는다는 건, 논리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둘 중 하나는 충족시켜야 된다고 늘 생각해왔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검색만으로 모든 지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식 교육의 필요가 없어진다는 2017년 당시의 교육계 분위기를 뒤집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을 풍성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교양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질문하고 탐구하여 인공지능을 깊이 이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고력의 기반이 되는 지식은 꼭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검색 엔진에서 단위 지식을 일일이 검색하여 수동적으로 수용하던 시기와는 다른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검색엔진과 인공지능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선 따로 독립적인 글을 써야할 것이다. 어쨌든, 어느덧 8년차 중견교사가 된 나는 지금도 2017년 7월 첫 발령을 받은 이래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며 지식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하던 그 사람들이 무책임하다 생각한다.
결국 검색엔진에 밀려 가치가 바래진 지식은 다시 인간 정신 활동의 필요조건으로 복귀했다. 스스로 인공지능을 이용해 무엇을 하고자 하고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 지를 되돌아보는 생각하는 힘이 매우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은 질문을 하는 힘에서 비롯되고 그것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호기심이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전공 저변을 쌓는다'는 목표에 도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부족한 코딩 기능을 보충할 순 있어도, 그 인공지능을 이용해 내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자원을 둘러싼 작용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순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책 <IT 세계의 괴물들>은 '전공 저변을 쌓는다'는 내 문제 의식과 정확히 일치하는 책이었다.
<IT 세계의 괴물들>은 기존에 컴퓨터를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아 컴퓨터를 둘러싼 모든 게 낯선 사람이 기본부터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더군다나 만화로 되어 있어서 내 학생들이 why 시리즈로 과학과 사회 개념들을 배우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읽을 책 가져오라고 하면 why 시리즈나 설민석 만화 시리즈를 가져오는 모습을 여러 번 봤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식을 기반으로 한 호기심을 기르는 방법 중에 학습만화를 읽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몇 없다.
사실 난 이 책을 읽으며 작년부터 들었던 방송대 컴퓨터과학과 20개의 수업을 복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컴퓨터과학과 편입을 시작한 작년에 이 책을 잡게 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때는 그로스로그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데다가 방송대 홈페이지는 웬만하면 들어가 보지도 않고(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컴퓨터과학과 단톡방의 존재는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트랜지스터부터 시작을 한다. 나는 그 접근이 너무 좋았다.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컴퓨터도 어쨌든 물리적인 실체이고 아주 작은 컴퓨터의 단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중요해 보이지만 잘 몰랐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는 반도체 이야기로 이어지고 반도체는 컴퓨터 구조로 이어진다.
나스닥 기술주에 투자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개론적인 내용부터 컴퓨터 구조, 컴퓨터의 이해, 운영체제, 자료구조, 알고리즘, C 프로그래밍, C++ 프로그래밍, 파이썬 프로그래밍, 프로그래밍 언어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인공지능과 관련한 이야기들로 이어지는데, 곧 기말시험에서 마주칠 것 같은 내용들과 겹치는 것들도 꽤 많았다.
작년엔 낯선 용어들로 머리 위에서 부유하기만 했던 개념들이 만화에서 실체를 갖춘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전달되니 예전보다 뚜렷하게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컴퓨터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고 컴퓨터과학에 대해 이제 막 공부하기 시작했다면 정적 언어와 동적 언어의 차이라든가, RAM과 캐시의 역할이라든가,
프론트엔드 개발 언어와 백엔드 개발 언어의 차이라든가 같은 것들은 대학 교재의 설명을 반복해 읽는 것보다 이 책의 설명을 다시 훑는 것이 훨씬 직관적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적어도 나같이 개발 경험이 없다시피 하고 이제 막 컴퓨터과학 학부 공부를 시작한 입장에선 복습과 정리의 의의가 큰 독서가 될 것이다.
어찌됐든 그로스로그 북 서클의 첫 책으로 지금까지의 학습 개념들을 되돌아보며 대략적으로 지금까지 이해하고 있는 이미지가 적합한 것이었는지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무려 전공자니까 어설프게나마 지식 체계를 구축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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