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혁신다운 혁신, 진짜 문제다운 문제를 다뤄보자


   내가 컴퓨터과학으로 빠지게 된 이유는 교육학과 '한국의 문과 학문들'에 대한 실망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소모적이기만 한 비생산성에 피로감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한다는 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앎을 확장하여 나의 인식 지평을 넓히고 실천 수준의 층위를 높이는 데 그 목표가 있는 것인데, 내가 군대를 전역하고 들어가게 된 교직 현장은 그런 방식으로 굴러가는 세계가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거짓말을 만들고 그 거짓말을 정당화하고 꾸며주기 위해 더 많은 거짓말들을 만들어 뒷받침하는 거대한 거짓말 대단위 공업단지, 거짓말 콤비나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악의적인 목적의 거짓말이 아닌, 실체가 없는 말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지는 모르겠다.

  내가 2017년 전역하고 7월 1일에 발령받은 학교는 화성시 서부 외진 곳에 위치한 전교생 40명 남짓한 6학급 규모의 작은 시골 혁신학교였다. 나는 학교 창고에서 살아야 하는 등 여러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 학교가 나름의 이상적인 교육 공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학교에서만 5년 가까이 있었다. 그것은 내 개인적 삶을 두고는 어리석은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나는 행복했다. 

  아이들은 순박했고, 선생님들은 열정적이었다. 물리적으로 도시와 떨어져 끝없이 고립된 지역을 향해 외줄로 된 도로를 따라 이어진 곳에 위치해 드넓은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는데 학교를 둘러싼 마을공동체가 학교를 품어주며 아이들과 하나되어 함께 성장해나간다는 분위기와 철학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록 도회지에 있는 아이들에 비해 학업적 능력은 떨어졌지만, 그곳엔 아이들이 다치지 않은 마음으로 여러 감동적인 동화 같은 장면들을 자아내는 교육적 감동이 있었다. 나는 남한산초등학교와 분당에 있는 보평초등학교 같은 곳들이 '모범적인 혁신학교' 사례라며 그들이 하는 것이 정답이니 연수를 받든 따로 공부를 하든 어떻게든 따라 배워야 한다는 문화엔 거부감이 들었다. 그들이 딱히 정답이란 생각도 안 들고, 내가 있던 학교가 그들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피소드를 자아내는 감동은 감동인 거고, 현실은 또 따로 현실일 뿐이다. 혁신학교라고 매일매일 회의를 해야 하고, 어떤 카테고리의 항목들을 '혁신'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에 이에 맞춰 혁신을 얼마나 했는지로 학교 평가를 하고 잘한건지 못한건지 따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부조리하다는 느낌도 강했다. 혁신은 의심과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따라야 할 기준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매일매일 회의를 하는 것도 학교장이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이 민주적으로 회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의를 통해 결정내리는 일이 많으면 혁신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학교장님이 정한 사안임에도 요식 행위 같은 회의를 해야 하는 '혁신'이 이루어지거나 학교장님의 마음에 드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회의를 이어나가야 하는 '혁신'이 이루어졌다. 하물며 그 학교장님이 정하는 일들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강의식 수업을 활동식 수업으로 바꾸는 것도 혁신이기 때문에 강의식 전달 수업은 나쁜 것이었다. 그래서 강의식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활동을 위한 활동을 구상해 때워야 하는 '혁신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혁신 보고서니 혁신문화니 혁신학교 네트워크니, 교육계엔 드넓은 혁신의 영토가 펼쳐졌다. 물론 교육에서의 '혁신'을 조지프 슘페터가 규정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시장 균형을 해체하여 더 많은 이윤, 더 나은 생산성과 개선된 생산요소의 결합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혁신과 달리 교육계에서 '제멋대로' 규정한 혁신이 과연 실체는 있는 것인지 나는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그저 경영의 용어를 빌린 검증되지 않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잔뜩 진지한 얼굴로 큰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이 '학교 혁신'이란 행위는 결국 혁신놀이일 뿐이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 사업의 계획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듯이 다 함께 짜고 역할놀이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 없는 부조리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를 지탱하는 문서들과 교육 이론들도 무의미한 말로 쌓아 올린 성채에 불과해 보였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체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중언부언과 말 꾸미기 모음집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이려나. 

  그런 의미에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 컴퓨터과학은 내가 속해 있던 세계와는 달리, 진짜 실체와 가치를 다루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IT 스타트업 씬도 사업지원금을 따내기 위한 과장된 구호와 허세만이 난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과학은 세상이 변하는 가장 첨단의 기술 발전을 다루고 있으면서 여러 행위자들로 인해 실시간으로 검증받고 공유되는 실체가 명확한 학문이다. 0과 1로 된 비트에서 복잡한 소프트웨어의 구현, 컴퓨팅 자원의 최적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관계에까지 이르고 나면 우리의 문명을 지탱하고 있는 모바일, 컴퓨터 환경이 얼마나 심오한 원리 위에 토대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압도되게 된다.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더 고도화된 IT 문명 위에서 자라고 배울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지식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꽤 실질적 의미를 가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온통 혁신이란 말로 도배된 공허한 문서의 세계에서 또 다른 혁신의 세계로 옮겨 왔다. 나는 기왕에 혁신이란 말을 어쩔 수 없이 접하고 살 바엔 정말 혁신을 하고 싶었다. 그 혁신은 정말 제대로 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남들이 대충 혁신이라고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걸 우스꽝스럽게 따라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컴퓨터과학 전공은 그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지적 도구를 제공한다. 기술적 환경의 개선과 소프트웨어 개발은 삶의 다양한 문제에 부딪힌 이들을 구해주고, 답답하고 불편한 지점들을 편리하게 고쳐주며, 새로운 가치와 질서, 생태계를 창출한다. 나는 컴퓨터과학 공부로 새로운 힘을 키워 프로덕트 빌더로서 더 나은 인식 지평과 실천 능력을 갖춘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