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대의 추억, 5세대 전쟁 그리고 배합전과 전후방 교란에 대하여
결국 내가 병법(兵法)을 직접적으로 배운 곳은 충북 괴산에 있는 육군학생군사학교와 전남 장성에 있는 육군포병학교일 것이다.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선 거의 한 명의 분대장급 병사로서 어떻게 보병으로서의 기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았다는 것에 가까웠지만(우린 육사가 아니니까), 육군포병학교에선 그래도 나름 장교 신분으로 대접을 받으며 전술에 대한 이론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수준과 내용의 깊이가 어떠했든 얼마 전까지 흙먼지 뒤집어 쓰고 K2 들고 뛰어다니다가 곧 장교로서 자대에 배치될 거라고 공부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되고 교실에서 전술을 책을 펴고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상징적이었달까. 뭐 그런다고 기초군사교육이나 겨우 수료한 ROTC 소위 나부랭이들이 바로 제갈량, 군사 칸베에, 나폴레옹, 롬멜이 될 일은 없었겠지만, 이제 막 20대 중반이 된 초롱초롱한 눈빛의 학생장교 청년들은 귀여울 정도로 진지했다.
전술 시간이었는지 전쟁법 시간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막 임관해 병과교육을 받던 2015년의 우리들은 나름 진지하게 토론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나와 더욱 유명해진 영화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와 같은 상황이 제시되었다. 요약하자면 적에게 협력하여 아군에게 큰 피해를 줄지 모르는 민간인을 죽여야 하느냐, 죽이지 말아야 하느냐.
나는 그때 북한군의 주된 전략 중 하나가 '배합전'으로 군과 민간인을 뒤섞어 공작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무고한 민간인이므로 공격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이론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했다가 교관님께 '배합전이 뭔지 알고는 하는 소리냐'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배합전은 전면에서 주력이 전방을 공격할 때 특작부대가 후방을 교란함으로써 상대 전선의 안팎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개념인데 용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나는 신문을 자주 읽어 배합전이라는 용어를 교범이 아닌 신문에서 접했는데, 마오쩌둥의 인민해방군·베트남전쟁의 베트콩과 같은 비정규전·유격전 전략을 소련식 대규모 정규전에 의한 기동전략과 배합하는 것이라 이해했기 때문에 배합전 용어를 그렇게 쓴 것이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무장요원을 민간인 틈에 숨기고 민간인인 척 위장하고 군과 민간인 사이의 구분을 흐리는 인민전쟁과 게릴라 전술을 우리 교범상의 배합전이란 용어와 부정확하게 혼용한 셈이 되었다.
물론 스물다섯 때의 그때와 지금은 생각이 다소 바뀌긴 했다. 임관하기 2년 정도 전이었던 때 독서회 성혁이와 이야기할 때도 '버튼 하나 누르면 미사일이 날아가 타격하는 세상인데 지상전 수행하는 군대가 왜 필요하냐'하는 말에, '너는 현대전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만 봐도 알듯이 폭격기랑 미사일만 날아간다고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전쟁은 지상전 병력이 지역을 점령할 때 시작해 민간인들을 지배 질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때의 전쟁은 국가군 대 비국가 행위자(반군, 테러조직)의 교전이 끝이지 않는 4세대 전쟁이었다. 군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민간인을 죽인다면 오히려 전쟁은 장기전이 되고 민간인을 두고 선전전·심리전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열세에 처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국현대사의 문제가 되고 있는 제주도 4·3 반란이 그랬고, 베트남전쟁의 패전이 그랬다. 스물다섯 때는 본인 스스로가 군인의 입장에서, 군과 민간인을 완전히 구별할 수 없는 실전 상황에서 부득이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현장의 군인을 범죄자로만 모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지 않냐는 억울함을 항변하려는 생각이 강했다면, 서른다섯인 지금엔 그러한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작전 목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억울한 건 억울한 거고, 한계를 우격다짐으로만 돌파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이제 전쟁은 5세대 전쟁으로 진화했다. 이제 전쟁의 주체는 비국가적 행위자를 넘어서 기술 네트워크로 넘어왔다. 이것은 내가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이유와 맞닿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군주는 어떤 분야이든 군사와 밀접한 분야를 알아야 한다는게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교훈이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은 군주 같은 면모가 있어야 한다. 나는 목숨을 다투는 전투에 있어서도 주체가 되는 정보 기술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민간인이 어느 질서를 선택하게 만드느냐를 두고 다투는 정치전도 정보 체계, 플랫폼 위에서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통념이 곧 전쟁터가 된다. 인지전(cognitive warfare) 시대의 시작이었다.
결국 북한의 배합전도 전방과 후방이 그래도 분리됐던 6·25 때와 다르게(물론 그때도 영남지방에 공비가 준동하고 임시수도 부산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공작은 무수히 있었다) 동시 전장화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혼란을 조장하고 총체적 마비 상태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규군, 비정규군, 군사력, 심리전, 사이버전 등 다양한 수단을 동시에 투입해 우리가 제대로 대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초한전(unrestricted warfare)이라 표현해 재래식 전쟁을 초월해 그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쓰는 무제한의 전쟁이라 말한다. 물론 중국공산당의 초한전은 조선인민군의 배합전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5세대 전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초한전 모델은 결코 빈약하게 취급되어선 안될 것이다.
장교로 현역에서 임무 수행을 할 때 늘 접했던 문구는 '병력·화력·장애물의 통합적 운용'과 '종심 깊은 전술 운용'이었다. 이제 5세대 전쟁은 그걸 넘어서 기술과 민간 사회의 모든 영역까지 종심 깊고 통합적으로 운용할 것을 요구하는 전쟁이 되었다는 것이겠다. 이것은 우리 머나먼 동쪽 나라 일반인들이 쓰는 sns에까지 가짜뉴스를 깊숙이 침투시키고 인지전을 수행하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뚜렷이 나타났다. 이것은 전쟁의 영역을 넘어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제 누군가와 싸우고자 할 때 기존에 어디까지가 전투의 영역으로 분류됐느냐의 경계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 분야가 싸움에 이용되고 동원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제압할 때 이제 싸움과 무관한 영역은 없다는 것, 상대방의 모든 정보, 상대방이 밟고 있는 모든 현실적 맥락이 파괴와 싸움의 무대가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5세대 전쟁의 시대이자 초한전의 시대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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